"한국은 원자력 선진국 '골드 스탠더드' 요구 … 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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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아인혼 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대표는 18일 “새 협정은 국제 원자력계에서 격상된 한국의 지위를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양국에 ‘윈윈’”이라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미국은 한국을 원자력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 농축·재처리 포기를 선언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 특보는 18일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 대해 “미국은 한국이 미래에 농축과 재처리를 할 가능성을 닫아두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했듯이 한국에 ‘골드 스탠더드(핵 연료 농축·재처리 금지)’를 적용하는 일은 없다”며 이처럼 말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한-유럽연합(EU) 중동문제 국제회의’ 참석차 방한한 그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만났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해 아인혼 전 특보는 “국제 원자력 무대에서 격상된 한국의 위치가 반영될 것이고 한국 학계와 산업계에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4년 넘게 개정 협상을 벌여 왔으며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인혼 전 특보는 협상이 시작된 2010년 10월부터 2013년 4월까지 미국 측 협상대표를 맡았다.

 그는 협상 초기 가장 큰 쟁점은 핵 연료 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의 건식 재처리)과 관련해 ‘진전된 합의(advanced consent)’를 담을 것인지 여부였다고 전했다. 현 상태론 미국의 사전허가 없이는 농축·재처리를 할 수 없다. 한국은 새 협정에서 권리를 확보하려고 한다.

 그는 “사실 초기 미국의 입장은 단순히 ‘안 된다. 지금처럼 가자’였다”며 “하지만 한국 측 대표들은 굉장히 강경했고 결국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새 협정에서 담고 있는 이 문제(농축·재처리 허용)에 대한 답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아니다(not no, not now)’라는 것”이라며 “파이로프로세싱은 실험실 수준의 연구일 뿐이니 상업성 등 이 기술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될 때까지 (재처리 허용) 결정을 미루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만간 발표될 새 협정문에 한국에 농축·재처리 권한을 준 것은 아니지만 명시적 금지를 하지 않고 여지를 남겼음을 시사한 것이다. 강경 비확산론자인 그는 “솔직히 말하면 새 협정은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담진 못했다. 나는 꺼렸던 타협을 미국이 결국 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특히 한국이 우라늄 농축 권한을 원하는 데 대해 “현재 시장은 농축 우라늄 공급 과잉 상태로, 한국이 안정적으로 핵연료를 확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상황 변동이 있을 때 협정을 수정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양쪽의 동의하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새 협정의 만료 기간은 30년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원자력 협정 중 최단기”라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저장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는 이미 중간 저장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시작했고 각료급 논의 등 이를 활성화할 방안이 명시될 것”이라며 “한·미 협정에만 있는 독특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축 전문가인 아인혼 전 특보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하는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것은 중국의 역할”이라며 “전적으로 국익에 기반해 한국이 결정할 문제에 중국이 간섭하려는(intrude)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혹자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오만한 것이라고 말하겠다”며 “중국이 정말 걱정된다면 북한이 미사일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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