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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그룹 오너 캔다더라" 루머에 쩔쩔매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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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완구 국무총리가 지난 2월 26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을 규명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기업 수사가 시작됐다.[중앙포토]

# 굴지의 유통업체 A그룹은 19일 오전 발칵 뒤집혔다. 검찰이 다시 ‘비자금 수사’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A그룹은 2009년과 2013년에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으며 검찰의 비자금 수사선상에 올랐다. 재차 불거진 의혹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예산과 채용을 담당하는 직원 5명이 면접비를 주기 위해 현금을 쌓아둔 것인데 이걸 비자금 조성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소문에 검찰도 소명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첨단범죄수사2부에서 조사를 했지만 아직 뚜렷한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새로 의미 있는 수사를 할 상황은 아니다”고 밝혔다.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 최근 B그룹의 ‘사장단 회의’에선 사정(司正)이 도마에 올랐다. 검찰이 ‘총수 일가’의 계좌 추적을 벌인다는 소식 때문이다. B사 관계자는 “올 초에 이미 검찰 조사를 통해 소명됐던 내용”이라며 “사장단 회의에서 이를 안팎에 적극 알리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앞서 이달 초부터 ‘사설 정보지’에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며 “회사에선 걱정 없다고 하는데 수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직원들끼리 연일 모여 걱정을 한다”고 전했다.

 검찰이 기업을 겨냥한 사정의 칼을 다시 꺼내 들면서 재계 전체가 폭풍우에 휘말린 듯한 모습이다. 검찰의 대기업 수사는 2013년 CJ그룹 이후 2년 만이다. 실탄을 그동안 쌓아놓은 ‘비리 첩보’다. 반환점을 넘기는 집권 3년차를 맞아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까지 나서 ‘부패와의 전쟁’을 재촉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최근 포스코엔 해외투자자들의 연락이 쇄도한다.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에 대해 “소명해 달라”는 요구다. 기업설명(IR) 담당자들은 “다른 투자 위험은 없다”고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비리 기업의 처벌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무차별 수사설’이 확산된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선 최근 수사를 놓고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자원외교와 핵심 실세 등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A·B그룹처럼 다른 업종 회사들도 ‘도매금(都賣金)’으로 수사 리스트에 거론된다. 재계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으로 수사설에 오른 기업들은 신인도 추락과 내부 동요로 직격탄을 맞는다”고 우려했다. 숭실대 전삼현(법학) 교수는 “범죄 사실을 밝히려면 먼저 혐의가 있어야 하는데 일제 단속하듯 수사한다면 권한 남용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사정 바람에 진이 빠진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1년차인 2013년엔 상반기부터 CJ·효성·KT&G 등에 대한 세무조사가 잇따랐다. 기업들은 쩔쩔맸다. 당시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경제민주화 등을 이유로 일제히 기업 조사에 나섰다. 지난해엔 ‘세월호 참사’ 여파로 기업 수사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올 들어 다시 검찰발 사정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선 각 업종에 ‘연쇄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한다. C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에너지·자원 등의 업종에선 누가 신사업이나 투자 등을 하겠느냐”며 “전방위 수사 분위기가 확산하면 이런 업종뿐 아니라 다른 곳도 ‘전염 효과’처럼 몸을 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이런 공기를 감지한 듯 19일엔 선을 긋는 듯한 모양새를 비췄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언급되는 여러 기업에 대해 동시에 수사를 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특수수사 출신의 김경진 변호사는 “사정 국면이 전방위로 확산될지 여부는 국세청·관세청 같은 조세 당국이 함께 움직이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 사건까지 결합되면 처벌 수위가 커지고 대상도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정 정국에 진입한다는 얘기다. 명지대 조동근(경제학) 교수는 “비리와 부패는 처벌해야 하지만 몰아치기 검찰 수사보다는 ‘상시적 국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이번 수사가 기업을 옥죄는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김준술·박미소·이현택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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