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숨은 보수표 … 네타냐후 4선 총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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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아내 사라가 18일 텔 아비브의 리쿠드당 당사에서 총선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텔 아비브=신화 뉴시스]

결국 숨은 표가 보수 강경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일으켜 세웠다. 17일 이스라엘 총선의 결과다.

 지난 주말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의 패배가 예견됐었다. 크네스트(이스라엘 의회)의 전체 120석 중 21~23석을 얻을 것으로 추정됐다. 중도 좌파인 시오니스트연합(SU·24석 안팎)보다 뒤진 수치였다. 투표 당일 출구조사에선 두 방송사가 리쿠드당과 SU가 모두 27석을 확보하는 박빙 승부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여니 딴판이었다. 리쿠드당은 단일 정당으론 최대 의석인 30석을 확보했다. 반면 SU는 24석에 그쳤다. 외신들은 “놀랍다”(로이터), “분명하면서도 견실한 승리”(뉴욕타임스)라고 타전했다. 현지 언론도 “압도적 승리”라고 봤다.

 네타냐후 총리는 “위대한 승리”라고 감격했다. 출구 조사 직후 “연정(聯政)을 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던 SU의 이삭 헤르조그 대표도 18일 오전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한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네타냐후 총리에겐 61석을 확보, 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과히 어렵지 않아보인다. 기존 연정 멤버를 포함하면 44석인데다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쿠라누당(10석)과 두 종류의 유대교 정당(각 7석)과의 연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과정 자체는 쉽지 않은 선거였다. 가자 전쟁으로 표현되는 팔레스타인 정책, 그리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노골적 대립 등 때문이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전직 수장들이 반대 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네타냐후의 실패가 성공을 압도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헤르조그를 지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유세 막판에 “다시 당선되면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을 막겠다”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보수층의 결집을 노린 것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국민의 지도자라고 주장하지만 (투표 결과) 국민 모두의 지도자는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의 과제가 있다는 의미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첫 총리로 9년을 재임했다. 이스라엘 초대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13년6개월)에 이은 두 번째 장수 총리였다. 다시 집권하면 최장수가 될 수도 있다.

 그는 1949년 텔아비브에서 출생했고 최정예 특수부대원으로 군 복무를 했다. 72년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으로 납치된 벨기에의 사베나 항공기 구출작전에 참여했다가 다치기도 했다. 그의 형 요나탄은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선 영웅이다. 1976년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 의해 ‘적지’인 우간다 엔테베로 납치된 프랑스 여객기를 구출하기 위한 이른바 ‘엔테베 작전’의 지휘관이었다. 90분 만에 인질 100여 명을 구하고 우간다에서 탈출했으나 자신은 끝내 숨졌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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