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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3D프린터로 … 똑딱똑딱 … 6분30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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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에서 벤처 창업가로 변신한 카본3D의 조셉 데시몬 CEO가 3D 프린터로 만든 구형 모양의 물체를 들고 있다. 카본3D는 기존 점층 방식과 다르게 액체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3차원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CLIP)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사진 TED]

공상과학(SF) 영화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에는 물 웅덩이 상태에서 순식간에 메탈(금속) 로봇으로 변하는 사이보그 악당 ‘T-1000’이 등장한다. 터미네이터2가 개봉한 1991년만 해도 T-1000의 등장 장면은 ‘컴퓨터그래픽(CG)의 혁명’이라 불릴 만큼 획기적인 사례였다. 당시엔 실사가 아닌 CG로도 단 몇 초만에 액체 형태를 로봇으로 변신시키는 일마저 불가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미네이터2가 출시된 지 24년이 지난 2015년, 드디어 액체로 로봇을 만드는 일이 차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TED 2015에서 로봇 T-1000처럼 액체 상태에서 순식간에 복잡한 구조물을 뽑아내는 3D 프린터가 첫 선을 보인 덕분이다. 스타트업(신생 기업) ‘카본3D’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조셉 데시몬이 놀라운 관련 기술을 세상에 처음 소개한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연구팀과 공동으로 액체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3차원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CLIP)을 개발했다고 16일(현지시간) TED 콘퍼런스에서 공개했다.

실제 콘퍼런스 현장에서 3D 프린터로 구형 모양 물체가 만들어지는 모습. [사진 TED]

 기존 방식보다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물체 구조도 이전 방식보다 더욱 세밀하게 표현이 가능해 상용화 여부가 불투명했던 3D프린팅 분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전망이다.

 이날 데시몬 CEO는 한 눈에 봐도 복잡한 형태의 구형 물체를 들고 연단에 등장했다. 그와 함께 연단에 나타난 건 3D 프린팅 기계였다. 그는 “지금까지의 3D 프린터는 사실 모두 다 기존 2D 프린팅 방식의 반복이었을 뿐”이라며 “이제 제대로 된 3D 프린팅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구형 물체를 가리키며 “가장 빠른 시간 내 3D 프린터로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6분 30초 뒤 데시몬 CEO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구형 물체가 연단 오른편에 있던 3D 프린터에서 만들어졌다. 그가 할당받은 강연 시간(9분) 안에 3D 프린팅 기술로 물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최소 3시간, 최장 11시간 30분 정도 걸려야 만들 수 있었다.

 언급한 대로 카본3D가 공개한 3D프린터(CLIP프린터)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제작 속도다. 속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기존의 3D 프린팅처럼 재료를 한 층 한 층 쌓는 적층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CLIP프린터의 핵심 장치는 액체 상태의 합성 수지가 담긴 수조(水槽) 밑바닥에 있는 창(window)이다. 이 창은 눈에 끼는 콘택트렌즈처럼 빛(자외선)과 산소를 통과시킨다. 자외선과 산소를 동시에 사용하는 셈이다.

카본3D사의 CLIP 3D프린터로 만든 10㎝ 높이의 에펠탑 모형. 시간당 10㎝의 속도로 만들었다. [사진 카본3D·사이언스]

 이 과정에서 자외선은 합성 수지를 굳히는 역할, 산소는 합성 수지가 굳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와 동시에 카본3D팀은 자외선으로 수지를 굳히는 동안 산소로는 여백 공간(일명 ‘Death zone’)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조각상을 만들 때 덩어리 빚기와 조각을 동시에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결과 1시간 만에 머리카락 두께(0.1㎜, 100만분의 1m)의 구조를 가진 10㎝ 높이의 에펠탑 모형 제작에 성공했다. 데시몬 CEO는 “24년 전 터미네이터를 보며 꿈꿨던 꿈을 현실로 나타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3D 프린팅 신기술은 대학 교수직을 홀연히 던진 데시몬 CEO가 2년 만에 공개하는 첫 작품이다. 2013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교수(화학공학)로 근무하던 그는 돌연 휴직계를 내고 미국 테크산업의 본산지인 ‘실리콘밸리’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실험실 내 활동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를 더 중요시하게 여기는 ‘미국식 창업 문화’를 몸소 실천한 셈이다. 그가 공개한 3D 프린팅 신기술은 애플 ‘매킨토시’ 컴퓨터와 소니 콤팩트디스크(CD), 스마트폰 터치 스크린 기술처럼 TED를 통해 세상에 공개된 ‘위대한 혁신’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데시몬 CEO는 앞으로 1년 안에 CLIP 방식의 3D 프린팅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치과 교정, 맞춤형 장기 제작뿐만 아니라 자동차·비행기 부품에까지 3D 프린팅이 쓸모있는 분야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강연 후 기자들과 따로 만난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창업을 권해왔지만 이제서야 교수로서 체면이 서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실험실에선 누구든지 혁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교 담장 밖에서도 그같은 혁신을 할 수 없다면, 사실은 그 어떤 누구도 이롭게 하지 않은 것과 같다.”

김한별 기자, 밴쿠버(캐나다)=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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