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남이 흉을 봐도 끙끙 앓기만 하는 20대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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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 의지만으론 안돼

Q (할 말 다하는 사람이 부러운 직장인) 20대 후반 여성입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제 고민은 쪼그라들어버린 제 자존감입니다. 학교 다닐 땐 늘 상위권이었고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아서인지 누가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편이고 매사에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물건이 없어졌는데 ‘네가 가져갔지’ 하면 대답도 잘 못하고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 어쩌지’ 걱정만 합니다. 남이 내 흉을 보아도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습니다. 참는 게 미덕이란 생각이 있지만 자기 주장도 확실하고 할 말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매사에 작아지는 나, 왜 이럴까요?

A (웃으며 입바른 소리하는 윤 교수) 자존감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죠. 자신에 대한 믿음인 자기 확신이기도 합니다. 자기 확신은 스스로를 ‘가치 있다’고 인식하고, 인생에 어려움이 와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자기 사랑과 자기 확신은 ‘깡’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앞뒤 없이 ‘무조건 사랑하고 확신하겠어’란 의지의 산물은 아니라는 거죠.

 건강한 자존감을 위해서는 내 마음에 대한 이해가 동반돼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대가 없이 사랑들에게 사랑과 우정을 베풀 거야’라고 삶의 목표를 정해 놓으면 계속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감성적 보상을 요구하는 게 우리의 본능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부모조차도 자녀가 나중에 나 몰라라 하면 섭섭한 게 인지상정이죠. 내 마음이 다다를 수 없는 너무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면, 그 목표를 맞출 수 없기에 계속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사연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분의 마음에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마음의 목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목표지만 이룰 수 없는 목표죠.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때론 원수가 되는 게 인생사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뇌에 입력되면 자존감이라는 주관적인 자기 사랑과 자기 확신은 흔들리게 됩니다.

02. 타인 아닌 날 위한 마음의 목표 세워야

Q 자존감이 마음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고보니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고 모든 사람과 다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이 제 마음 한 구석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좋은 목표 아닌가요. 좋은 목표를 갖고 살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혼돈이 생깁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열심히 살아야 행복하단 생각은 있었는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선 삶의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A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선 내 마음의 목표를 재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해 놓으면 내 마음의 자존감 계기판은 항상 아래로 떨어져 출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니 자괴감에 빠지고 자기 확신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학생 때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칭찬도 많이 받은 편이었는데 현재는 남에게 거절도 못하고 꼭 해야 하는 말도 잘 하지 못한다고 하셨죠. 학교 성적과 칭찬은 마음의 목표가 외부의 기준을 따르는 대표적인 예 입니다. 그런데 외부의 기준으로만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학교 성적이나 승진 같은 사회적 성취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인생사엔 굴곡이 있는 법이고 버틴다고 해도 언젠가는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칭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칭찬은 남의 평가인데 이 또한 내가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해도 다 사랑받을 수는 없습니다. 나한테 잘해도 그냥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를 그냥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니깐요. 남에게 거절도 못하고 꼭 해야 하는 말도 잘 못하는 행동 이면에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마음의 목표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선 비교에 의한 외부의 기준보단 본질적인 가치에 마음의 목표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것보다는 소박한 형용사와 동사로 표현될 수 있는 마음의 목표가 좋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개그맨이라고 하면 ‘개그맨 중 최다 고정 방송을 확보하겠다’ 내지는 ‘언제든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최고의 개그맨이 되겠다’란 마음의 목표보단 ‘한 명의 관객이 있어도 그의 마음을 유머로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한 개그맨이 되겠다’란 마음의 목표가 자존감 강화에 좋은 목표입니다. 목표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지만 목표가 주관적인 가치에 충실할 때 자존감도 올라가고 결국 실행 능력도 좋아져 오히려 인기 개그맨으로 롱런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제일 안 좋은 마음의 목표는 뭘까요. 목표가 아예 없는 경우입니다. 목표가 없기에 자존감을 올릴 삶의 성공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이죠.

03. 감사일기 써보기 등 행복 연습

Q 열심히 사는데도 내 마음은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지 항상 고민했는데 삶의 목표 설정이 중요한지는 몰랐네요. 그런데 마음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자존감이 자주 떨어지다 보니 ‘난 멋있어 난 행복해’라며 주문 외우듯 계속 그 생각을 주입하는데 잠시 긍정적인 기분이 들고는 다시 마음이 아래로 꺼져 버립니다. ‘다시 마음을 끌어올린 힘도 없다’라고 느낄 때마저 있습니다.

A 긍정적인 마음을 의지력으로 억지로 만들려고 하면 잠시뿐입니다. 효과는 있으나 감성 에너지를 너무 쓰게 돼 오히려 뇌에 피로가 오게 되고, 그 뇌의 피로는 부정적인 마음을 가져옵니다. 우리 뇌가 싱싱하게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게 행복 연습, 즉 행복 피트니스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행복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하면 근육량이 늘어나듯 ‘행복 피트니스’를 하면 행복감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 7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① 당신이 받은 축복을 셈하자. 행복일기 쓰기가 여기에 해당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일요일 저녁, 3개에서 5개의 현재 행복한 사건, 감사해야 하는 일을 쓰는 것입니다. ② 친절한 행동을 실천하자. 큰 봉사나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쁜 사람에게 순서 양보하기, 피곤해 보이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과 커피 한잔 권하기, 남의 고민 들어 주기 등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든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행동은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키고, 나와 주변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일으키며 행복감을 배가시키게 됩니다. ③ 인생의 즐거움을 음미하기. 한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멋진 가을의 정취 등 계절이 주는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 한 예입니다. 울적한 시간에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④ 멘토에게 감사하라.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방향을 제시해 준 고마운 사람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⑤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 나를 위해 용서하는 겁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복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행복감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⑥ 가족과 친구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라. 더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⑦ 신체 건강을 챙겨라. 충분한 수면, 운동, 스트레칭, 웃음은 짧은 시간에 당신의 기분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실천은 일상생활을 보다 만족스럽게 만들어 줍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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