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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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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한 고향 러시아에 보낸 마지막 인사

1917년 혁명은 러시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개개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남자도 희생양 중 한 명이었다. 좀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부르주아였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 번에 소개했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자산, 생계수단, 자유까지 모두 잃은 그는 마침내 12월 22일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내 두 딸과 함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수탉’과 자신의 미완성 오페라 ‘모나 바나’의 스케치, 단 두 개를 품에 안고 뚜껑도 없는 썰매에 올라 헬싱키로 도망왔다. 중년의 작곡가였던 그는 1년 동안 쉬지 않고 스칸디나비아를 돌며 피아노를 쳐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더 큰 금맥을 찾아 한 번 더 모험을 감행한다. 뉴욕행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인생은 이렇게 딱 반으로 나뉜다. 1873년생인 그가 작품번호 1번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한 것이 1890년이니 그로부터 이때까지 러시아인으로서의 삶이 1부, 미국으로 망명 후 1943년에 숨을 거두기까지의 삶이 2부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대부분 1부의 그다. 지난 번에 소개한 일생의 히트작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뿐 아니라 현대 오케스트라의 주요 레퍼토리인 교향곡 2번, 첼리스트들의 최고의 대곡인 첼로 소나타, 이외에도 피아노 소나타 2번, 전주곡집, 회화적 연습곡집, ‘보칼리즈’가 담긴 가곡집까지 모두 러시아인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이다.

2부에 쓴 곡들은 뭐가 있냐 물으신다면, 한마디로 말해 거의 없다.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변신한 그에겐 더이상 새로운 곡을 만들어낼 시간도 힘도 없었다. 실로 25년동안 그는 다른 작곡가들의 짧은 작품 몇 개를 콘서트용으로 편곡해낸 - 당연히 자신의 콘서트 레퍼토리를 늘리기 위해서 한 - 것 외에는 딱 여섯 곡을 남겼다. 그 중 최후의 작품이 바로 '교향적 무곡(Symphonic Dances)' 이다.

곡의 시작은 영락없이 ‘종(鐘)’이다. 당연하다. 그의 다른 음악들도 모두 종소리들로 채워져 있으니까.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시작, 천천히 똑같은 간격으로 여러번 들리는 피아노 음들은 멀리서부터 점차 가까워지는 큰 괘종, ‘러시아의 종’이라는 별명의 전주곡 작품 3의 2에 나오는 딱 그 종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의 3악장, 시작 부분의 빠르고 시끄러운 셋잇단음표는 길거리에 늘어진 크리스마스 장식의 손바닥만한 종들이다. 이 곡의 시작은 내가 보기엔, 그 때 그가 탄 그 썰매의 종이다.

이윽고 썰매가 출발하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 그런데 쉬지않고 내달리며 공격적인 음표들이 한층 더 사나워질 때쯤 갑자기 음악이 조용해진다. 곡이 시작한 지 3분도 채 안 됐는데. 각종 목관악기가 돌아가며 연주하는 반주 음형이 막처럼 드리워지면 홀연히 주인공 발레리나처럼 멜로디가 등장한다. 이 애달픈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는 바로, 색소폰. 다름 아닌 미국의 상징. 아! 음악이 순식간에 25년을 지나 현재 시점으로 돌아왔구나.

어째서 그는 지난날 교향곡 2번에서 마음껏 사용한 클라리넷이나 잉글리시혼 같은 악기는 다 제쳐두고 평소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도 않는 색소폰을 넣었을까? 알려진 대로 그저 누군가의 제안 때문에? 가장 러시아스러운 멜로디를 부르는 이 미국 악기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바뀌어버린 그 자신이었다. 실제 그의 인생 2부는 겉만 화려했을 뿐이었다. 재산도 명성도 되찾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그리운 고향 뿐이었다.

처음으로 미국에 장만한 집엔 가구부터 하인까지 모두 러시아산으로만 채웠다. 이 곡을 쓸 때쯤에는 급기야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어쩌면 그 즈음부터였을지 모른다. 자신앞에 다가오는 죽음과 마주한 것이. 그러지 않고서야 그 시기에 작곡한 세 곡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교향곡 3번, 이 곡 모두에 그렇게까지 강박적으로 Dies Irae(진노의 날: 레퀴엠의 한 파트)테마를 집어넣지는 않았을 테니.

죽음에 대한 그의 뚜렷한 공포는 2악장에 종류별로 묘사되어 있다. 등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섬뜩함, 마귀떼를 연상시키는 기괴함, 피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과 필연적인 외로움까지…. 스페인 춤곡을 연상시키는 3악장은 황소를 노려보는 투우사의 비장함과도 닮았다. 그리고 감춰진 채 아주 살짝씩만 드러나던 진노의 날 주제는 갈수록 그 윤곽이 선명해진다. 그것도 서슬퍼런 금관악기들이 고음으로 쩌렁쩌렁 불러대도록. 그런데 어느새 다가온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 죽음. 그래서 두렵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그 혼자만의 슬픈 죽음은 오히려 1악장 마지막 부분에 나와버렸다. 조금은 앞뒤없이 등장하는 장조 선율은 다름 아닌 그의 교향곡 1번의 주제 선율이다. 이 작품의 초연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그는 3년동안이나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원래는 장중하고 차가웠던 단조 선율은 이 곡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바뀌어 등장한다. 교향곡 1번을 알아도 얼핏 들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도 지워버리고자 무진 애를 썼을 그 곡,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곡, 하나뿐인 고향과 너무나도 닮은 그 곡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라흐마니노프가 인생 1, 2부를 다 합쳐 그려낸 것 중 최고로 슬픈 순간일 뿐 아니라 내가 아는 클래식 레퍼토리를 통틀어 단연 제일 슬픈 장면이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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