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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북·중이야기(14)] 김정일과 후진타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후진타오가 평양에 갔을 때 그는 작심한 듯 김정일에게 중국의 경제 발전과 개혁·개방의 성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면서 설명했습니다. 그는 “1974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은 연평균 9.4%씩 성장해 국내 총생산액이 1,473억 달러에서 1조 6,494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2004년 말까지 중국에서 실제로 사용한 외국 직접 투자액은 누계로 5,621억 달러에 달합니다”라고 전달했지요.

그리고 그는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큰 개발도상국으로써 인구가 많고 기초가 약하며 발전이 매우 고르지 못하고 발전 과정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모순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의 여러 민족 인민들은 의기 분발하여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을 밀고 나가고 있으며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할 데 대한 웅대한 목표를 실현하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의 새로운 국면을 끊임없이 개척하기 위해 노력합니다”라고 말했어요.

후진타오는 중국식 사회주의의 성과를 설명해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이는 덩샤오핑이 1983년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의 성과와 문제점을 설명한 것과 비슷합니다. 비록 개혁·개방은 어렵지만 극복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지요.

후진타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결국 핵을 선택했지요. 후진타오는 참을 만큼 참았는지 행동으로 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4일 만에 열린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 1718호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1718호는 군사적 공격을 제외한 모든 경제제재가 포함돼 있지요.

류젠차오 중국 대변인은 “북한은 반드시 국제사회의 호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 하며 빠른 시일 내에 6자 회담에 복귀해야 합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은 유엔의 각종 결의안을 이행할 것이며 1718호 결의안을 엄격히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지요.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의 원칙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제재의 동참을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해 핵실험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반대했습니다.

북한은 2006년 10월, 2009년 5월, 2013년 2월 세 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했지요. 김정일은 보란 듯이 성공했습니다. 중국의 핵실험과 북한의 핵실험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의 핵실험을 먼저 꺼내겠습니다. 중국은 1956년부터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습니다. 중국은 당시 국제적으로 고립됐고 미국은 물론 소련과도 대립했던 시기였지요. 마오쩌둥은 “원자탄을 가져야 한다. 남들에게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이 물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북한이 미국은 물론 한국과 대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마오쩌둥은 중·소 관계의 악화로 소련 과학자들이 철수(1959~1961년)한 뒤 ‘596 프로젝트’를 진행했지요. 596은 중국이 독자적 핵개발에 나선 1959년 6월을 뜻합니다. 소련 과학자들이 철수할 즈음 중국은 이미 독자적인 핵개발 능력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서기처 총서기였던 덩샤오핑은 연구원들을 만나 “비장한 마음으로 일해라. 잘못했을 경우 모든 책임은 우리 서기처가 진다”고 다그쳤지요. 그 때 덩샤오핑이 맡았던 총서기는 지금의 총서기가 아닙니다. 지금의 총서기에 해당하는 당시의 직책은 당주석 이었습니다. 당시 당주석은 마오쩌둥이 맡고 있었지요. (계속)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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