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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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일은 우수. 얼음이 풀리고 봄기운이 대지를 적시는 때. 그러나 그 우수가 아직 싸늘하게 얼어 있다. 더우기 한겨울 가뭄으로 땅마저 말라 있다.
우수날에 내리는 빗물을 옛사람들은 특히 「우수물」 이라고 했다.
눈이 아닌 빗방울이 대지를 적시면 땅속에서 잠자던 봄은 슬슬 기어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이야기했던가. 「W· 월리엄즈」는『보기엔 잠자듯 게으른 봄이/이제는 눈부시어 다가서 온다』고 했다.
1920년대의 시인 이장희도 『봄은 고양이로다』고 읊고있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졸음이 떠돌아라.』
봄은 햇볕을 받아 풀싹이 돋아나는 계절이다.
한자의 「춘」자는 바로 그뜻을 표현하고 있다.
양지쪽은 분명히 따뜻한 봄기운이로되 아직 공기는 차고 맵다. 혹 게으른 고양이나 그걸 못 느낄는지.
그러나 봄을 너무 기다리는 나머지 게으르다고 윽박지르지는 말자.
봄은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소리를 내고 우리 앞에 당도한다.
『얼음이 꽁꽁 얼었던 논과 시냇가에서 귀를 기울이면 얼응장을 뚫고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송림사이 응달진 언덕에 아직도 무더기무더기 쌓인 눈을 헤치고 맡아오던 흙속에서 봄냄새가 풍길 것 같기도 하다』고 심훈은『영원의 미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봄은 목왕지절이라고 했다. 나무의 기운이 성한 때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경칩이 멀지 않은데 아직 나무 기운이 성한것 같지는 않다.『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하는 마음으로 영국의 시인 「셸리」처럼 다만 의젓하게 기다리는 쪽이 나을까. 아니면 팔을 벌리고 멀리 달려오는 봄을 맞을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남쪽 문이 열렸다/오너라 나의 봄아 오너라/너는 내 가슴이
떨리는 대로 떨리누나/나의 봄아 오너라』하고 달려나갔다.
기다림은 아주 절실하지만 우리의 봄은 아직 깨어날 기미도 없는것 같다.
우수에 비도 안오는데 찬바람만 맞고 감기 들기에 안성마춤일 것 같다.
겨울 가뭄에 푸른기를 잃고 말라있는 보리도 우수물을 맞으면 파랗게 살아나겠지. 우수의 봄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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