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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디지틀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포공항 국내선청사 서쪽에 자리잡은 민항공의료센터 이곳2층 운동부하 심전도실에서 DC-10기 부기장 이송일씨(45)가 들어섰다.
이씨는 간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뒤 심전도기계 앞에 앉는다. 간호원이 이씨의 가슴과 어깨뒤쪽등 5군데에 전극을 부착하는순간 기계가 작동한다.
「재깍 재깍 재깍」. 가는소음과 함께 TV화면처럼 생긴 스크린에 심장의 움직임이 그라프로 바뀌어 나오고 스크린옆 디지틀 표시판에는 맥박과 혈압이 빨간숫자로 나타난다. 혈압90∼1백40, 맥박70, 보통상태에서 재본 이씨의 기본체력은 만점이다.
만족스런 표정의 이씨는 운동중의 신체변화를 체크하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기계앞에 마련된 운동대에 선다. 두손을 허리높이의 손잡이에 살짝 얹은뒤 똑바른 자세로 제자리 걷기를 시작한다.
『12분동안 빠른 걸음으로 걷게하면서 순간순간 숫자로 나타나는 심장활동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여러명의 심장전문의 역할을 혼자서 해내지요』
2천4백만원가량의 이 기계하나가 파일러트들의 심장 이상을 75%이상 발견, 비행중에 닥칠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또 치료방법을 강구하도록한다.
『종합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진단수치시대가 열렸습니다. 의학계도 디지틀시대에 접어든 것이지요』
대한항공 보건관리담당 계원철박사(60)의 설명이다.
민항공의료센터에는 운동부하 심전도외에 눈동자의 녹내장 여부를 측정하는 디지틀 안압측정기, 아무나 팔에감고 죄기만하면 최저·최고혈압이 간단히 숫자로 나타나는 디지틀혈압계, 디지틀맥박기, 디지틀체중기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40대남자가 앰뷸런스에 실려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디지틀 환자감시장치에 들어간다.
응급실 당직 의료진들은 여 환자의 두손·팔·항문등에 감시장치에 연결된 전극을 부착시킨다.
그 순간부터 환자의 맥박·심전·호흡·체온·혈압등 치료에 필요한 기초체크 포인트가 순간순간 스크린에 자동적으로 숫자로 나타난다. 과거의 경우 15∼20분의 초진시간이 불과 2∼3분으로 끝난다.
응급환자의 구명률을 그만큼 높인것이다. 2천만∼3천만원의 투자가 필요.
『의학계의 디지틀문명은 이제 보편화되었습니다. 웬만한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는 이 디지틀 환자감시장치가 다 갖추어져 있지요』
의료공학의 선구자격인 세브란스병원 김원기박사(33)는『이 기계가 치료기구는 아니지만 의료진의 일손을 덜어주면서 환자상태를 정확히 관찰하는데는 더없이 편리하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하오2시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지구레코드사에는 내노라하는 국내 대중가요 관계자 3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한국최초로 디지틀 녹음방식에 의해 제작된 「조용필제6집」시청회에 참석키위해서였다.
크기나 색깔등 외견상으로는 보통레코드 앨범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이「디지틀 앨범」1장이 한국레코드사 60년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은것이다.
이 디지틀앨범은 지난달 12일부터 20일까지 일본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조용필의 일본순회공연을 활용, 동경 CBS-소니레코드의 시나노마찌스튜디오에서 녹음한것. 1백40여시간의 제작시간에 일반앨범의 5∼6배에 해당하는 7백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초정밀 디지틀 녹음기에 의해 제작돼 음악적으로나 음질면에서나 흠잡을데가없는 레코드 예술의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청회에 참석했던 신일기획대표 지명길씨의 소감이다.
「바람과 갈대」,「정의 마음」등 12곡이 수록된 이음반은 음의 고저·강약·음색등을 직접 자기테이프에 수록하는 애널로그방식과는 달리 소리의 파장을 0과1의 숫자로 조합한 디지틀 부호로 바꾸어 녹음, 섬세한 음의 감정표현을 1백% 그대로 담을수있고 또 음을 재생시킬때 잡음이 전혀없는 장점을 지닌다. 가격은 일반앨범보다 5백∼6백원 비싼 2천8백원.
가장 대중화된 디지틀 제품은 역시 디지틀 시계. 보통 3만∼5만원선.
그러나 이처럼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결코 만만치 않다.
덕성여대학장 홍웅선박사(교육학)는『옛날에는 아이들이 시계보는 법을 배우면서 사고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으나 디지틀 제품의 출현으로 그같은 지적성장의 단계가 생략되고 말았다』며『멀지않아 아이들이 시계도는 방향이 무슨뜻이냐고 묻게될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애널로그 방식이 기계자체가 갖고있는 오차, 속도의 한계, 많은 에너지의 소모등과 함께 부피가 크고 무거운 단점을 지닌반면 디지틀 방식은 신호자체를 기계의 오차와는 상관없는 0과1의 숫자로 변환시킨다음 재생하기 때문에 애널로그가 지닌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할수 있다.
오늘날의 소형 대형 컴퓨터가 바로 이 디지틀방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순간순간에 판독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덕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많은 문화적 시간과 여유를 제공해주는 잇점만큼이나 우리로 하여금「생각」이라는 인간정신의 본질을 앗아가는 맹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인간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사회학자나 교육학자들의 한결같은 걱정이다.<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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