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하는 체르넨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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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드로포프」의 장례위원장직을 맡은 정치국원 「체르넨코」는 한 때 전 공산당서기장「브레즈네프」의 후계자로 간주됐던 크렘린의 정통파 지도자중의 한사람이다.
크렘린 내 보수파중의 한사람으로 알려진「체르넨코」는 71년부터 당중앙위원회의 정 위원으로 일해왔다.
1911년9월24일 우크라이나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체르넨코」는 18세 때 공산당청년동맹(콤소몰)의 간부로 일했으며 2년 후에는 정식당원이 됐다.
1948년부터 56년까지「체르넨코」는「브레즈네프」가 당 제1서기로 있던 몰다비아 공화국 당 선동선전부장직을 역임했으며 이후 모스크바의 중앙당으로 옮겼다.
1960년「브레즈네프」는「체르넨코」를 그의 개인보좌관으로 임명, 기니·모로코·가나 등의 여행에 동반했다.
「브레즈네프」가 65년「흐루시초프」실각 후 당 서기장이 됐을 때 「체르넨코」는 당 중앙위의 요직에 임명됐으며 그로부터 1년 후 투표권 없는 당 중앙위원이 됐고 71년에는 중앙위의 정 위원이 됐다. 「체르넨코」는 75년 헬싱키 유럽안보협력회의, 79년 빈 SALT-Ⅱ(전략무기제한회담) 협정 서명 때「브레즈네프」와 함께 모습을 나타내 후계자의 자리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82년「브레즈네프」가 사망한 후 당 서기장직과 최고회의 간부회의장직을 「안드로포프」에게 빼앗겼다. 그 후에도 「체르넨코」와 「안드로포프」간의 경쟁관계는 내면적으로 계속됐으며 「체르넨코」가 83년4월 한달 동안 병을 핑계로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도 모욕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83년6월 「체르넨코」는 「이념문제」를 다룬 중앙의 전체회의에서 소련체제상의 극적인 변화에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그의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는데 83년7월 그는 당 중앙위의 한 간부직을 내놓았다.
「체르넨코」는 지난해 11월7일 와병중인 「안드로포프」가 불참한 가운데 붉은 광장에서 거행된 한 경축행사장에 참석함으로써 그가 권력의 핵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외신=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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