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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또 만들자" "제대 사병 퇴직금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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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열린우리당 "위원회 만들자"=열린우리당은 특정계층을 직접 지원하는 법안이 다른 당에 비해 많았다. 또 각종 기구나 위원회를 새로 만들자는 법률안도 적지 않다. 위원회 만능주의에 빠진 정부와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를 위원회(또는 기구)를 만들어 해결하려는 성향이 엿보인다.

민병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안전특별법은 위험에 노출된 아동을 위해 국가 차원의 관심과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법안은 이런 일을 총괄할 아동안전정책심의위원회를 만들고 16개 광역자치단체에 아동안전대책위원회를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동안전지원센터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유지하는 데 한 해 207억원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전체 예산추계액 중 기구 설립.운영 비용이 절반을 넘는 법안이 45개나 제출됐다. 필요한 예산은 5년간 5조원으로 추계됐다. 한나라당이 제출한 유사한 성격의 법안에 들어가는 비용은 1조원 수준이었다.

위원회 하나를 만들면 직원 1인당 4467만원의 인건비, 12.5평의 사무공간(임차료 평당 약 200만원), 1700만원의 운영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이다. 이 밖에 집기와 사무용품 구입비 등을 고려하면 위원회당 연간 30억~50억원, 5년 추계하면 200억원이 쉽게 넘어간다. 지방조직까지 만들면 규모가 훨씬 커진다.

계명대 윤영진 교수는 "조직은 한번 만들면 잘 없어지지 않고, 또 존재하는 한 자꾸 쓸데없는 일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꼭 필요한 내용의 법이라도 가능하면 기존 조직을 이용하는 발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한나라당 "감세 주장하며 돈 드는 법안 제출"=한나라당은 정부가 불요불급한 사업에 대한 재정지출을 줄이면 얼마든지 감세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원 개개인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법안을 쏟아냈다.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중 관련 예산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인정한 법안만 163개에 달한다. 추계서에 제시한 금액은 모두 91조7000억원에 이른다.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의 예산 소요액이 압도적이다. 26개 법안에 45조9000억원을 요구했다.

당론인 기초연금제 실시를 담은 윤건영 의원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37조1000억원의 재정이 필요한 것으로 추계해 가장 컸다. 이 밖에 고경화 의원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제출한 4개 법안(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료급여법.주거급여법.자활지원법)은 6조원 가까이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계됐다.

실효성에 의심이 가는 법안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윤건영 의원의 군인연금법 등 4개 법안은 제대하는 사병들에게도 퇴직금을 주자는 내용이다. 1인당 288만원(중사 최저호봉 3개월 분)을 주자는 것인데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만 4조3000억원에 달한다.

부모를 모시는 가정에 아파트 우선분양권과 간병인 수당, 교육비를 지원하자는 효실천 장려 및 지원법(황우여)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 재정 우선순위 고려가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신고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분양권 부당전매, 부패 신고나 부정 입찰 등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자는 법안이 7건이나 제출됐다. 필요한 예산은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법안의 13배인 4000억원에 이른다.

서병수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한나라당은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자는 것인 만큼 의원입법안과 예산 삭감을 직접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당 정책과 장기적인 재정 수급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적인 법안을 내는 경우도 있어 이를 보완할 당과 국회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소수정당, 의석 따라 법안 제출 명암=민주노동당은 법안발의 최소인원이 10명으로 줄어든 여건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민노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 중 20명 이상의 의원이 발의에 참여한 법안은 학교급식법(최순영) 등 4개뿐이었다. 반면 발의 의원 수가 10명뿐인 법안이 13개였다.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낸 법안이 대부분이었다. 현애자 의원은 의료비에 대한 국가 부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체계를 개혁하는 내용의 건강보험법 등 6개 법안을 한꺼번에 제출했다. 25조4000억원이 필요한 법안들이다. 단병호 의원은 철도공사 부채를 국가 부담으로 전환하자며 4조8000억원이 필요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제출했다. 그러나 의석수가 적어 제출 법안 중 원안 또는 수정안이 통과된 경우는 아직 없다. 건강검진을 강화하자는 최순영 의원의 학교보건법 등 4개 법안만 논의 과정에서 마련된 대안이 통과됐다.

반면 최근까지 의원수가 10명이 안 됐던 민주당과 자민련이 제출한 예산소요 법안은 극소수였다. 민주당의 경우 10건(6조500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화폐단위를 변경(리디노미네이션)하자는 김효석 의원의 한국은행법 개정안과 원전 주변지역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발전소주변지역지원법(2건 중 1건은 철회)이 소요 예산의 절반을 차지했다. 자민련은 1건(1조1000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과 조승수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상황이 역전돼 남은 임기 동안 민노당 입법 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민주당의 입법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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