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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병원의 컴퓨터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등록번호177-85-13-8. 환자 조배근. 특진의사 이효석. 나이 58년11개월. 병력79년 위염….』
서울대병원 외래접수창구. 창구여직원은 조씨 (경기도포천군가산면)가 내민 진료신청서기재사항을 컴퓨터단말기에 입력시킨다.
접수창구 TV화면에는 조씨기록이 나타나면서 즉시 지하실에 있는 컴퓨터센터 주기억장치(CPU)에 입력, 영구 보관된다.
접수시간은 정확히 30초. 동시에 접수창구안쪽에 있는 컴퓨터프린터에 조씨의 기록이 주르르 찍혀 나온다.
원무부의사과직원은 기록을 뽑아 이효석박사 진료실에 접수시켰다.
조씨의 증세는 소화가 안되고 피로하며 오른쪽상복부의 통증.
이박사는 간기능검사의뢰서와 7일간의 약처방전을 떼어주었다.
진료가 끝난후 조씨의 진료기록은 의사과에서 다시 컴퓨터에 입력된다.
의료보험환자인 조씨는 검사료와 약값을 내기위해 수납창구로 갔다. 창구여직원은 익숙한 솜씨로 보험약품이 기재된 책에서 코드번호만 찾아 단말기 키를 두드리자 약값이 즉시 찍혀나왔다.
조씨 이 혈액검사를 마치고 약국앞에서 자신의 번호가 전광판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다.
조씨가 병원에 가서 보낸 5시간동안 몇마디 말을 나눠본것은 진료실에 들어갔을때뿐.
모든것이 기계적으로 처리됐다.
엄청나게 밀리는 환자를 진료하기 의해 서울대·연세의료원·경희의료원등은 접수·진료비계산·차트보관등을 전산화시켰다. 난치병치료를 위해서는 첨단의료시설을 이용, 진단·검사·치료를 기계화시켰다.
새해들어 회사원 박연규씨(41·서울서초동491)는 매년 하던대로 고려병원종합검진센터에 건강진단을 받으러갔다.
상오9시 아침을 굶은 박씨는 접수아가씨들의 상냥한 인사를 받으며 먼저 ID카드 (수진카드)를 받았다.
등록번호 8109232-.앞으로 모든검사는 이카드를 검사기계에 꽂음으로써 가능하다.
14가지 검사가 물흐르듯 진행된다. 처음 여직원들의 상냥한 미소와는 달리 모든 검사실에서는 자동화된 기계가 박씨를 맞았다.
먼저 채열·채뇨·채분순서.『덜컥』 뒷문이 열리고 소형엘리베이터가 내려와 검사물을 수거해간다.
초음파내과검사실에서는 로보트팔처럼 생긴 탐촉자(검사기)가 박씨의 간·위장 ·쓸개를 문지를때마다 컴퓨터화면에 끔틀거리는 내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위·간질환·담석증·담낭암등 30여가지를 즉석에서 체크하고 이상이 있으면 X레이필름도 뽑아볼 수 있다.
신체자동계측실.
ID카드를 꽂고 계측기에 올라섰다.
신장1백72·7cm, 체중57·4kg 비만도87%. 3가지 수치가 동시에 나타난다.
시력검사때는 검사기를 들여다보며 손잡이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는대로 검사표가 움직이며 시력측정치가 자동으로 입력된다. 이와함게 동맥경화·고혈압·당뇨병이 체크되는 안압, 안저검사도 시행됐다.
14가지 검사가 끝날무렵 임상병리표가 검사실에서 내려오면 컴퓨터기록계에넣어 즉시 수치로 바뀌어 찍혀나온다.
박씨는 종합결과표를 들고 종합판정실로 들어갔다. 이제까지 걸린시간은 모두 3시간 비용은 20만원이다.
비로소 처음으로 판정의사 이문걸박사(57)를 만나 검사결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박씨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담당의사를 만나니『이곳이 기계실이 아닌 병원이었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의공학의 발달은 오늘날 컴퓨터를 환자병실에 들여놓게했다.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는「컴퓨터감시및 경보장치」가 24시간 불침번을 서며 환자의 돌변상황을 체크한다.
「심방중격결손증」수술 (심장벽에 뚫어진 구멍을 수술)을 받은 박명숙씨 (48·서울이문동)의 7번베드옆에는 맥박·체온·혈압을 자동체크하는 컴퓨터감시장치와 심전도모니터·인공호흡기·자동체온조절기등이 지켜서서 박씨가 돌연한 이상을 일으키지 않나 감시한다. 감시장치는 졸거나 게으름을 부리지도 않는다.
감시장치에는 붉은글씨로「맥박82(1분가), 체온 35·9도, 혈압 118∼59」를 나타내고 있다.
새벽1시. 박씨의 맥박이 갑자기 70으로 떨어졌다.
감독간호원 신미옥씨(35)의 데스크에 있는 중앙감시·경보장치가『삐익삐익』비상신호를 울린다.
신씨와 당직의사는 박씨의 침대로 뛰어가 응급조치를 취했다.
중환자19명의 침대옆에는 모두 박씨와 같은 자동감시장치가 있고 이는 다시 중앙감시장치와 연결돼 있다. 감시장치가격은 대당2천만∼3천만원.
환자1명당 병실료는 10만∼60만원(의료보험은 20%).
호흡이 잠시만 정지되도 경보가 울린다.
자동감시가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경보장치가 혹시라도 고장나면 환자는 위기를 맞는다. 그래서 사람이 감실할때보다 못할때도 없지않다. 『의술은 인술』이란 말이있다.
의사는「히포크라테스선서」가 가르치듯 따뜻한 가슴으로 환자를 치료하는것이 중요하다.
최신의료기재의 발달은 진단·치료의 효율성을 높였지만 환자와 의료진간의 관계를 기계매커니즘화한것도 사실이다.
연세의료원가정의학과 윤방부박사는『따뜻한 인간애와 윤리를 바탕으로 환자를 대하는것이 첨단의학기술의 개발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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