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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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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론의 실습장
캠퍼스가 겨울방학을 맞는다.
강의실 지붕에도, 학교 담장에도 눈이 쌓여 순백의 망토를 걸칠 때 지하대학의 MT그룹은 성향이 분명히 다른 두개의 진영으로 갈린다.
그 하나는 모색과 실험, 방황의 긴 역정을 마무리짓고 학생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다수의 순수집단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는 편향된 의식, 과격한 혁명론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현실타파 행동그룹이다.
그들은 더 이상의 이론습득이나 역량성숙이 필요 없다고 믿는다. 사상의 실천·행동에 나서게 된다.
전체 대학인중 후자는 극히 일부분에 제한되어있다. 그러나 그들 일부분이 갖고 있는 혁명철학이 오늘날 대학의 면학분위기를 해치고 급기야 우리의 사회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데 까지 사태를 유도하고 있는데 당국이나 학원, 그리고 사회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극소수 사상학생들의 행동도식은 산업체 침투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제2의 MT가 산업현장에서 노동야학의 이름으로 전개된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L선배는 MT에서 배운 한국노동구조의 모순을 체험하기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라고 권하더군요.』
B대 K군(법학과)은 우리경제의 실상을 볼 수 있다는 충동도 있었으나 방법에서 거부감을 느껴 L선배의 권유를 뿌리쳤다.
L군은 달랐다. 중학교3년을 중퇴했다고 허위이력서를 써내고 제강업체인 부산시내 D사의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하루 일당3천원. 시간외수당이 시간당 7백 원이었다.
그는 회사근처에 자취방을 정하고 밤이면 같은 선반(선반) 견습공 8명을 모아놓고 야학을 시작했다.
처음엔 간단한 영어와 한자공부였다.1개월 뒤 이 회사에서 견습공수료증을 받은 L군은 종업원 5백명을 둔 B공업사의 정식 선반공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는 20여명의 근로자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시작했다. 한자·영어공부에 틈틈이 문학을 곁들였다. 배움에 굶주렸던 남녀근로자들이 L군의 명강의(?) 에 4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이 야학에 취미를 불였을때쯤 L군은 노동운동·조직·노사간 문제점 등 차츰 본격적인 MT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적고 인구는 과밀합니다. 따라서 수출에 의한 신장을 지탱하려면 근로자들의 저임금 정책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의생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피땀 흘려 벌어들이는 돈은 결국 기업주 1인의 배를 불리고 자본가와 결탁한 정권의 유지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의식훈련 조차 없던 노동자들에겐 신선한(?) 쇼크로 들렸고 그들은 박수를 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 근로자들은 L군의 의식주입으로 한 꺼풀 한 꺼풀 사상무장을 굳혀갔다. 현실불만은 늘어나고 근로의욕은 멀어졌다. 그들은 점차 L군의 4단계혁명도식의 도구로 되어갔다.
L군의 4단계. 그것은 근로대중조직에 침투(1단계), 노동자를 조직화하여 폭력시위를 유발하고(2단계)혁명지도부를 결성. 무장투쟁을 벌이며(3단계) 정권을 장악, 민중주체 정부를 수립한다(4단계)는 것이었다.
L군은 모종 국가변란사건으로 구속됐다.
의식화된 대학생들이 자신의 학력을 속이고 신분에 걸맞지 않는 단순노동자의 가면을 쓰는 것은 근로자들에게 동류의식을 심어주고 그들로부터 신뢰감을 얻기 위한 하나의 최면이다. 아픔과 고통을 같이하면서 무의식중에 사상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저 낮은 곳에 임하는」자세다. 행동파 학생들은 저 낮은 곳의 근로자들을 혁명의식하의 선택된「세포」로 보고있다.
자신들의 의식화를 실천하는 행동의 전위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구로동 I법랑은 이들 의식화 학생과 근로자들의 집단투쟁으로 회사가 문을 닫는 비극을 겪었다.
K대 C군이 이 기업체 담당이었다. 그는 1학년 MT멤버를 투입했다. 멤버들은 공원들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심을 보이는 공원들에게 회사근처 자취방의 C군을 소개했다. 예비의식자의 모집책인 셈이다.
C군이 근로야학 의식화교육을 끝마칠 때쯤 I법랑에는 2백여 명의 산업체 혁명투사들이 심어졌다. 한때 시장을 석권했던 I법랑은 생산보다는 노동쟁의 연속 속에 차츰 멍들기 시작했고 결국 다른 6백여 종업원의 일자리를 앗아가 버렸다.
대학가 MT의 극단적인 변질형태다.
『하루 5백개씩 제품이 나오던 것이 4백개로, 또다시 3백개로 떨어지더니 드디어 집단행동으로 나오더군요.』
산업체에 뛰어든 의식화 학생의 근로야학으로 피해를 보았던 Y시기의 L전무 말이다.
이 회사에는 S대 C군이 역시 중졸이력을 위장하고 근로자들 속에 끼어 들었다.
그는 SM(스튜던트 무브먼트·학생운동)과 LM (레이버 무브먼트·노동운동)이 연결된 혁명만이 현 산업사회의 모순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고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기존 노조가 와해되고 새로운 노조를 만들더군요. 그들은 하루 8시간 노동엄수, 시간외수당으로 당시기준보다 3백% 인상, 작업환경개선 노조의 승인 없는 해고 무효 등 수십 가지의 요구조건을 내걸었습니다.』
L전무의 설명은 계속된다.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사정이 있는 만큼 한꺼번에 들어줄 수 없지 않느냐. 차츰차츰 개선해나가자고 했지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타결 점을 찾자고 호소했어요]
C군이 중심이 된 노조는 곧바로 경영주를『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기업인』으로 매도하고 사보타지를 벌였다.
일련의 이들 사건은 당시 치안당국이「심상치 않은 조짐」으로 판단, 수사에 착수했고 이는 S대,K대,Y대등 극렬MT그룹의 핵심멤버들이 연합하여 전개했던 산업체의식화 및 행동실천으로 밝혀졌다.
이들로 인해 연일 노동쟁의와 공장내 집단파업, 생산기계의 파괴로 진통을 겪었던 기업체만도 I법랑·K화성·D제강·K섬유·Y산업 등이었다.
81년 11월부터 82년 봄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호기심 강한 대학생들이 미처 체험해보지 못하고 대학에서 배울 수도 없는 노동연설을 현장에 접근해 알아보겠다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장을 통한 정확한 현실인식에 그쳐야할 뿐 집단행동의「지령자」가 되어 생산을 방해하는 것까지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C대 P교수는『일부 학생들이 경제문제에 관한 한 불과 몇 권의 전문서적을 읽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현실에 적용하려는 오류를 범하고있다』고 지적한다.
정치나 사회문제처럼 경제가 일관된 이론·사고·행동양식만으로 해결될 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많은 지식인들은 폭력이나 혁명 없이도 사회정의실현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합리와 이성으로 현실에 참여했던 대다수 대학인들의 축적된 힘이 자칫 극소수 학생들의 방종과 탈선으로 같은 함정에 빠질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출발점을 모색해야될 때다. 우리의 젊은 지성인들은 지난날의 파행적 악순환을 되풀이할 반지성의 맹아를 스스로 과감히 수술할 때가 아닐까.<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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