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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피카소와 아인슈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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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림은 자유다. 도약하면 밧줄을 놓쳐 추락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 있으면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사람들을 일깨우고,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파블로 피카소)

핵물리학자인 서울대 물리학부의 민동필(58) 교수. 지난해 이맘때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란 창조자 모임을 만든 열정의 리더다. 모임의 애칭은 만남이란 뜻의 프랑스어 '랑콩트르(Rencontre)'다. 랑콩트르는 서울대.포항공대.한양대의 물리학 교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균관대 미술학부 교수, 독립적인 화가.무용가들이 만나는 공간이다.

10월 22일 전주 전북대에서 열린 랑콩트르 공연은 컴퓨터와 소리, 춤과 이미지, 물리와 미학이 충돌하고 결합하고 빛을 뿜어내는 무대였다. 청소년 관람객들은 우주창조와 같은 빅뱅의 상상력을 자극받았을 것이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 민 교수는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두 살 차이였지만 활동 공간이 달랐던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민 교수의 정신 안에서 만나고 있었다. 두 창조자는 민 교수의 입을 빌려 "한 사람의 관점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선언했다.

세상은 누가 바꾸는가. 경탄하는 영혼이 바꾼다. 창조자들은 작고 새로운 것에 놀란다. 나이가 들어도 그들의 질문하는 습관은 살아 있다. 아인슈타인은 열여섯 살 때 경이롭게 여겼던 물음을 어른이 되어서도 버리지 않았다. '사람이 빛과 같은 속도로 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이 질문이 상대성 이론의 시작이었다. 답은 "달리는 사람에겐 시간이 정지한다. 따라서 시간은 상대적이며 소멸할 수 있다."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숫자와 수학을 아주 싫어했다. 대신 0에서 비둘기의 눈을, 2에서 비둘기의 날개를 보았다. 그는 소년 시절 비둘기 그리기에 미쳤다.

세상은 또 집착하는 투혼이 바꾼다. 근성이다. 도전에 맞서고 상황에 굴하지 않는 힘이다. 천재나 신동은 집중력과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피카소는 지치지 않고 일을 했다. 그는 창녀의 표정을 탐구하기 위해 감옥에 들어갔다.

현대인의 심미관을 바꿔 놓았다는 '아비뇽의 처녀들'. 이 한 작품을 위해 피카소는 생애 175권의 스케치 노트 중 8권을 소비했다. 피카소 인생은 연습의 인생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생산하기 전에 당대의 물리학적 지식을 섭렵했다.

탈 굴레의 자유정신, 그것도 세상을 바꾼다. 혁신의 욕구다. 현재의 설명체계에 만족하는 한 세상의 굴레는 언제나 그대로다. 자유정신은 현실의 친숙함과 불화가 잦은 편이다. 대신 낯선 미래의 운명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모험이고 도전하는 정신이다.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참조)

경탄과 근성, 자유하는 정신. 이 세 가지는 20세기 두 위대한 창조자의 특별한 자질이었다. 21세기에 이 자질은 사람들의 보편적 습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건 과학과 예술의 만남, 즉 랑콩트르가 지난 1년간 알아낸 진실이다. 랑콩트르는 12월 2, 3일 대전에서 2005년의 마지막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갖는다.

추신:경탄과 근성, 자유의 정신이 특별히 사흘 전 대입 수능시험을 치르고 사회에 쏟아져 나온 60만 젊은이들의 습관이 되면 좋겠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