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25와 이승만 대통령(95)-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 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맥아더」 장군이 20일 전선은 완전히 갖추어져 있어서 중공군을 몰아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미8군은 극히 만족스러운 태도로 임무수행을 하고 있으며 한국 교두보 유지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으로 비행해오는 도중에 준비했던 성명서를 미8군 회의실에서 기자들에게 발표했고 「리지웨이」 장군은 낙하산 부대용 바지를 입고 겉저고리 양편 주머니에 수류탄을 넣고있던 채로 「맥아더」 장군을 수행했다.

<김활난 박사가 성금>
「맥아더」 장군의 이번 성명 발표가 워싱턴과 미8군 및 유엔군 장성들에게 아무 탈 없이 받아들여지기를 우리는 마음속으로 바라고있다.
오후에 김활난 박사가 와서 국방부 제3국의 여자 의용 대원들이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고 「워커」 장군의 동상 건립 기금으로 써달라고 월급을 모아 가지고 자기를 찾아왔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일러 시설이 없는 우리 관저에서 난로도 못 피우게 하고 온몸을 담요로 감싼 채 집무실에서 일하고있는 대통령을 보며 김활난 박사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연세도 있으시니 난로 정도는 피우고 일하시도록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다리 밑에서 떨고 있는 수많은 피난민 동포들을 생각하면 이것도 과분하다고 말했다. "찬 손을 따뜻하게 해줄 테니 내게 가까이 오라" 고 대통령이 김 박사에게 말하자 "허락 없이는 안 된다" 고 내가 농담을 해서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었다.
1월23일.
「올리버」 박사가 미국에서의 대한민국 홍보 계획을 후원하는 책임을 면하게 해줄 것과 변영태 씨로 하여금 그 일까지 맡게 해줄 것을 간청하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내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미국에서의 홍보 관계 계획이 중요한 것인지를 「올리버」 박사에게 설명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리고 계속 변영태 씨를 도와 함께 일해줄 것도 아울러 당부했다.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최근의 미국 언론 보도들을 보면 국제 연합군은 「명예로운 철수」를 하든가 아니면 「한국에서 축출될 것」이라는 말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전투중인 한국 전선에 대한 이러한 보도들을 읽으면 우리나라 일반 민간인들에 뿐만 아니라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여러 국가의 전투요원들에게 그것은 가소롭기도 하고 동시에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 세계의 적색 분자들을 고무시키는 이런 기삿거리, 즉 소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 이런 지각없는 화젯거리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미 언론 보도에 실망>
미국 관측통들의 순전한 추측에서 이러한 기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 기밀에 속하는 것까지도 앞질러 보도하는 극성스런 미국 언론 때문에 현지의 장군들은 애를 먹을 때가 많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1월24일.
뉴욕타임즈의 일요 잡지 여기자 「거푸르트·새뮤얼즈」 양이 와서 우리와 함께 점심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피난민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팔레스타인이나 독일 등의 피난민 수용소를 가보았지만 여기와 같이 비참하고 불쌍한 광경은 보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수용소에 있는 우리 한국의 어린애들이 영양실조의 상태는 보이지 않지만 특히 평양에서 나오려했던 그토록 많은 애들이 부모를 잃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비극이라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미군은 피난민들이 간선도로에 몰려드는 것을 원치 않았고 교량을 폭파해서 그들이 건너오지 못하도록 제지를 한 것이었다.
우리 주민들은 다른 교량으로 나오게 해달라고 호소를 했건만 담당자이던 미군 대령은 간선도로를 군대가 사용할 수 있게 비워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한다고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인상하자는 안이 통과되어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전재민들에게 거처할 곳을 마련해주도록 하라고 하던 그 입과 그 손이 어찌 자신들의 세비 인상안 건만 만장일치로 가결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신문에 비난하는 글이 실려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못하다고들 한다.
중요한 국보들과 귀중한 문화재들이 안전지대로 대피되어 잘 보관되고 있다고 이병주씨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금관 및 국보 대부분과 이조실록과 귀중한 문헌들이 모두 무사히 이송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지키라" 고 그 지역의 전투경찰과 최치환 총경에게 특별지시를 했었다.

<8만 대장경 지켜라>
전란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소중한 국보와 문화재가 소실되거나 침략자들에 약탈되었지만 항상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 우리 민족의 혼과 독창력만은 결코 빼앗기지 않은 채 우리핏줄 속에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다고 대통령은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문화민족의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에 대통령은 그토록 파란 많은 인생 여정을 거쳐오면서도 늘 자기의 기쁨과 슬픔을 시로 승화시키고 그토록 붓글씨를 잘 쓰는가 보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칭찬하거나 아내가 남편을 칭찬하면 "바보"라고 흉을 본다고 대통령은 절대로 자기를 칭찬하는 말을 남 앞에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나에게 여러 차례 일러주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대통령이 나에게 바보 같은 아내라고 할지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