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생활문화 전승 돼야 한다|가정의례준칙 올바른 개정방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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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생활관행과 불협화음을 빚어온「가정의례준칙」이 현실화된다. 정부-여당 당정정책조정회의가 최근 개선키로 의견을 모은 준칙의 대표적 문제점은 결혼식 피로연.
개선주장의 배경은『결혼식 음식접대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때는 2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한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제로 지켜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상가에 보내는 화환에 「이름」을 못쓰게 한 것도 공허한 조항이라고 지적됐다.
그러나 오랜 전통의 생활문화 관습과 유리된 가정의례준칙의 문제점들이 충분히 지적되진 못했다. 마땅히 권장돼야할 혼례의식인 「구식결혼식」의 금지문제는 빠질 수 없는 개선점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상례에서의 굴건제복금지도 장례식이 갖는「장엄성」의 의미에 비추어 검토해 볼 만한 문제다.
가정의례준칙의 일부 비현실성은 그 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잘못된 산업화과정의 비리가 엄숙한 관혼상제의 의례에까지 끼어 들어 호화혼수·호화장례식·뇌물부조 등이 일부지도층과 특권층에서 말썽을 일으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서민대중들까지도 준칙의 일부 공허한 비현실적 조항들을 무작위적으로 무시,「범법자」가 돼왔다는 점이다.
허례허식의 추방을 입법 의지로 한 가정의례준칙이 처음 제정된 것은 지난 73년 5월.
이 준칙은 혼례에서의 「함잡이」(제6조2항), 상례의 노제·반우제·삼우제 (제7조) 등을 금했다.
제사는 기제를 제주로부터 할아버지(2대) 까지만 (제17조) 허용했다.
이 같은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은 법으로서만 강제할 수 없는「관습의 속성」과 오랜 관혼상제의 관례때문에 많은 갈등을 빚어왔다. 국민 모두가 한번쯤은 이 법률을 위반하지 않을 수 없는게 현실이었다.
흔한 결혼식장 주변의「음식점 피로연」·상례·제례 등에서 법률대로만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관혼상제와 같은 의례는 인생의 마디마디를 가름하는 중요한 「통과의식」이다.
인간은 이러한 의식을 통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도덕·윤리의 생활문화를 형성한다.
한국의 전통 관혼상제 의례는 다소의 형식주의적 요소를 제외한다면 세계 어느 의례에도 손색없는 고유 의식이라는 게 많은 국내의 학자들의 견해다.
정부당국은 오래 전부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주체성 확립을 경제개발 못지 않은 중요 국정지표로 거듭 강조해왔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중요 부분인 훌륭한 생활문화의 전승이 「신식」(?) 의례법령에 추방되는 예가 없지 않은 모순을 빚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통혼례(구식결혼식)이다.
당국은 권장사항이 아니라고 해서 구식결혼시장의 영업허가를 금해왔고 한국문화재보호협회의 전승을 위한 「회원제 구식혼례」마저 단속하는 웃지 못할 난센스를 빚기도 했다.
고유 전통생활문화의 하나인 구식혼례는 이제 서구식혼례에 완전 밀려난 채 식장구석의 폐백실에서 신랑·신부가 입는 사모관대와 원삼족두리로 겨우 원숭이 꼬리의 흔적인 미골 같은「잔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상례 역시 인간 죽음의 엄숙함을 일깨우고 생명에의 경외심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볼 때 굴건제복 같은 「장엄의식」을 지나친 허례허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동양의 서구화 표본인 일본의 경우 지금도 국민절대다수가 결혼식을 신도식, 장례식은 불교식, 제례는 유교식으로 봉행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한국보다 덜 서구화됐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앞으로 개선될 가정의례는 전통생활문화의 전승·발전과 주체적 가치관 정립 등을 감안해 단순한 허례허식관이나 「낭비」로만 치부하는 관점을 폭넓게 재검토해야겠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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