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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듯 싶다. 일기예보 시간에 내일은 섭씨 영하15도니, 20도니 하는 소릴 들으면 이불속에서도 몸이 움츠러드는 서민생활. 그러나 추위도 이제 2월에 접어들면 그 기세가 꺾이겠지. 꽃샘바람이 아무리 맵다한들 얼음밑에서 돌돌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나 메마른 나뭇가지에 오르는 물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으랴.
회색빛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면서도 마음 설레기보단 저 눈길에 늦게 퇴근해 들어올 남편이 혹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수북한 연탄재며 쓰레기로 산더미처럼 커진 리어카를 끌어야 하는 청소원 아저씨의 발길이 얼마나 미끄러우랴 하는 안스러운 마음이 앞서곤하니 『아유, 김치냄새가 난다구, 정말』하고 놀려대는 동생에게도 웃어줄 수 있는 너그러움이 생기나 보다
거의 집안에만 갇혀 생활해야하는 다섯 살, 세살된 아이들이 문만 열면 밖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을 하는데도 감기 걸리면 속상하고 질척한 눈길에 옷이라도 버리면 귀찮다는 이유로 감금하다시피하는 나의 횡포도 봄이 되면 눈 녹듯 하리라.
아이들과 함께 보드라와진 흙냄새를 즐기며 겨우내 굳어진 꽃밭을 일구고 꽃씨를 뿌려야지. 이마에 와 부서지는 따뜻한 봄볕에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창공을 보면 종달새가 힘차게 날아갈테고, 저멀리 논에선 쟁기질하는 농부의 『이랴!』 소리가 얼마나 희망차고 정겹게 들려올 것인가.
사계절 모두 쾌적한 온도에서 계절을 의식못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환경을 부러워하거나 원해본 적은 없다. 긴 겨울이 지난후 마루끝에 서서 쬐어보는 봄볕은 얼마나 다사롭던가.
매년 오는 봄이지만 매번 고맙고, 반갑고, 희망찬 손님이다.
오늘도 마르지 않은 빨래를 방으로, 부엌으로 끌고다니는 내 치마에 매달려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달래는 내마음은 그리운 이를 기다리듯, 벌써 봄이 오는 길어귀에 나서있다.
김현주 <충남 서산군 서산읍 동문1구 742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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