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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제도…이것이 문제다 개선의 길은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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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일 서울대합격자 발표장 앞의 L군(18). 그는 낙방의 쓴맛을 다시면서 발길을 돌리려다 어깨를 두드리는 친구C군(18)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의아해 얼떨결에 물었다.
1, 2, 3지망을 줄곧 법학과로 썼던 C군은 합격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I고교 출신의 C군은 내신1등급에 학력고사성적 2백78점이었다. 법관이 꿈이었던 L군은 학력고사에서 3백1점을 따냈으나 예상합격선에 훨씬 못미쳐 법대를 포기하고 정치학과와 사회학과를 l, 2지망으로 선택했다가 낙방했다.
현행 선시험-후지원제도는 이처럼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못하는 낙방생을 양산할뿐 아니라 지원과정에서 눈치작전으로 벌어지는 대혼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지원가가 몰리지 않았던 법대 원서접수창구앞에 섰더라면 L군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으로 4년째 치러지는 현행 대학입시제도는 그동안 적지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벌어지는 점수창구앞의 눈치작전과 도박입시라는 누명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안정된 제도로 정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더욱 확실히 증명되고 있다.
선시험-후지원으로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한산한 창구를 찾는 수험생을 나무랄수는 없다.
물론 대학별로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후시험 제도에서도 경쟁률이 낮은 학과를 고르기 위해 눈치를 보는 수험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내신등급과 학력고사성적이 이미 결정돼있는 상태에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수험생에게 적성에 따라 진지하게 지원하고 도박하듯 하지말라는 충고는 설득력이 없다는데 있다.
어차피 수험생에게는 합격이 지상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 판에 현행제도는 더더구나 학생들이 소신이나 적성에 따라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나름의 특성을 팽개치고 1점이라도 더 딴 학생을 뽑아 획일화된 서열의 상층부로 올라서려고만 할뿐 특성있는 학과를 육성하거나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어렵게 됐다. 수험생들이 미리 받아온 점수를 획일적인 척도에 따라 계산, 학과별 모집인원을 채우는 동안 그 점수로 대학은 서열화되고 있다
학력고사는 사지선다의 객관식 고사로만 구성돼 단순암기능력외에 고등정신기능측정이 어렵고, 내신의 말썽을 두려워한 나머지 고교이하교육에서도 평가는 주어진 답을 선택하는 능력이상을 측정하지 못한다. 문제해결력이나 표현력 등 창의적인 정신기능은 학교 교육에서 소외되고, 나름대로의 논리전개나 의사표현은 어떤 단계의 학교 교육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다.
서울대 김경동교수는 이같은 현행 대학입시제도를 한마디로 「절름발이 제도」라고 했다. 『대학의 입학생선발은 그 학생이 중등교육과정을 어느정도 소화했는지와 대학에서 수학할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가 동시에 평가돼야 한다』고 전제한 김교수는 『현행제도는 처음의 평가만에 그치고 두 번째 평가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실시하는 학력고사와 고교가 행사하는 내신성적평가외에 학생을 받아들여 교육시켜야할 대학에도 입학후 수학능력을 평가할수 있는 선발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문시험을 통한 논리적 사고능력평가, 문답시험을 통한 학문적 깊이와 이해력 평가. 그리고 면접시험을 통한 인품의 평가는 대학이 반드시 행사해야할 선발기능이라고 김교수는 지적했다.
서울영동고 김후택교장은 『요즘 학생들 사이에는 자신이 실력이 없어서 입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운이 없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팽배해있다』고 지적, 『선시험-후지원에 따른 병폐를 완화하고, 학교교육에서 논리적 사고능력, 응용 및 표현력 등 창의적인 능력을 강조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제도는 보완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교육해야할 입학생선발권은 당연히 대학이 가져야한다. 중등교육의 정상화와 입학시험의 긍정성을 보강한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내신 및 학력고사를 전면 부인하기는 어렵더라도 대학이 입학생 선발기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고있는 현제도는 잘못돼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지적이다.
완전한 선시험-후지원제에 따라 벌어지는 눈치작전·배짱합격·도박입시 등 갖가지 비교육적 부작용을 줄이고 객관식 일변도의 평가에 따른 단순정신기능훈련에서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는 한편 대학이 자육적인 선발권을 일부라도 행사할수 있도록하는 방안이 모색돼야할 때다.
서울대 박성수교수는 이를 위해 현행의 「내신+학력고사」로만 구성된 2원구조는 대학이 여하는 3원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등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고교가 내신권한을 갖고, 공정성을 높이기위해 국가가 학력고사를 시행하는 것외에 대학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대학 자체도 어떤 형태의 선발권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신 30%+학력고사 50%의 하한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머지 20%중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학에 맡기고, 대학은 나름대로의 작문시험 등을 통해 그 기능을 행사하도록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내신에도 문제가 없지않고 학력고사 또한 수험생이 너무 많아 출제와 채점에 한계가 있다.
물론 대학에 따라 학교별로 치르는 시험에도 문제는 있다.
따라서 이들 3가지 기둥을 놓고 계속 그 기능수행의 결과를 평가하면서 「30-50-20」%의 비율을 조정해 갈때만 대학입시제도는 정착의 길을 찾을수 있을것 같다. <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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