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문맹자 2백만명 넘어|정부서 「퇴치 운동」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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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읽고 쓰는 즐거움을 모두가 누리자』-.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문맹 퇴치 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프랑스에서의 문맹 퇴치 운동은 그 동안 관련 민간 단체들에 의해 여러 각도에서 펼쳐져 왔으나 정부 차원에서 이 운동이 추진되는 것은 46년 이후 처음이다. 현대 문명 국가에서 문맹자가 있다면 얼마나 있겠느냐는 낙관적인 생각이 그 동안 정부안의 지배적인 견해였던 만큼 프랑스 정부의 이번 문맹 퇴치 비상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문맹자는 글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준 문맹자까지 포함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전문가들은 문맹자가 2백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프랑스 문맹 백서」는 전 인구 (5천5백만명)의 약 10%나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초·중등학교 어린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확하게 읽고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맹 근절의 중대한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얼마 전 남불니스 교육 구청 관할의 94개 중학 1만2천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22·48%가 글을 읽지 못하고 45·19%가 작문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이들 중 71·53%는 받아쓰기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소년층의 이 같은 문맹 현상은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 교육에 그 책임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교원들이 갈수록 줄어만가는 어린이들의 독서 의욕을 바로 잡아주지 못하는데도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린이들의 독서율 감소는 말할 나위 없이 TV·라디오·전화의 범람이 그 원흉이다. 각급 학교에 설치되기 시작한 교육용 컴퓨터·퍼스컴 등이 책과 만나는 시간을 어린이들로부터 뺏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사진과 그림이 듬뿍 들어있지 않은 책은 전혀 팔리지 않는다는 어린이도서 출판업자들의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이야기다.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편지 쓰는 불평을 전화가 덜어주고 독서의 즐거움은 TV화면이 대신 채워주고 있다. 쓰지 않고 읽지 않아도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된 사회가 문맹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문맹자의 사회적 소외 격리 가능성에서 오는 사회적 불평등, 문맹자와 범죄의 상관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둔다면 문맹 퇴치는 유독 프랑스만의 과제가 아닐 것 같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1일 문맹 퇴치를 전담할 상설 기구 설치, 문맹 실태 전국 조사, 교원 훈련 강화와 교육 정책 재검토, 전국 도서관을 통한 독서 운동 전개 등 12개항에 달하는 문맹 퇴치 방안을 발표하고 이 운동을 장기적으로 펴나가기로 했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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