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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진객"의 수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작년 한겨울 잠수교 위에서 교통사고가 부쩍 늘어 화제가 됐다. 원인을 캐고 보니 다리 양옆의 물 속에서 떼지어 놀고 있는 철새를 구경하느라 「한눈팔기 운전」을 하기 때문이었다.
겨울이면 날아드는 한강변 철새들. 소음과 매연에 찌든 도시인들에겐 구하고 반가운 손님에 틀림없다.
이 겨울 진 객이 죽음을 당했다. 발목이 부러지고 발가락이 으스러진 채. 물갈퀴가 찢어져 흐른 피는 흰눈을 덮고 있었다.
독자제보로 돌아본 한강변 철새 터는 줄줄이 숨겨진 쥐덫과 발버둥에 뽑힌 깃털이 악덕 상혼이 할퀸 상처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82년11월 사이나 볍씨에 횡사한 갑천황새 사건 후 14개월만에 보는 「자연피살현장」은 쓰레기 주워담기나 깨진 병 모으는 게 결코 자연보호가 아니라는 걸 실감케 했다. 우리사회의 의식수준을 나타내는 한 척도 같기도 했다.
70년대 이후 범국민적인 자연보호 노력의 성과로 죽어가던 한강이 소생하고 있고 그래서 2~3년 전부터 부쩍 늘어난 겨울철새를 우리는 더욱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모처럼 다시 찾아들기 시작한 철새들이 사냥감으로 학살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의 자연보호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난지도 근처에서는 총질까지 해 새를 잡고 있었다.
여의도 밤섬 일대에서는 농약 바른 볍씨로 마구잡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박제·요리용이다. 서울시내에선 많을 땐 한 가게에서 하루 20~30마리의 겨울새들이 박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중 아름답다는 천둥오리의 박제 1마리 값이 4만원.
특히 고방오리 등 철새는 신경통·고혈압에 특효라는 민간요법 때문에 요리점에서 2만~3만원씩에 다투어 사간다는 얘기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사람의 목숨에는 둔감해졌으면서 하찮은 새들의 수난에 신문이 호들갑을 떠느냐고. 들짐승이 사람을 위해 유용하게 쓰이는 편이 두고만 보는 것 보다 더 낫지 않으냐고.
우리가 한강의 철새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물론 철새의 보호를 위한 보호에서가 아니다. 인간을 위한 자연보호의 일부로서의 관심이다.
강에는 물고기가 살고 새들이 날아들어야 한다. 이것이 자연이다. 1천만의 시민이 모여 북적대는 수도 한복판 유유히 흐르는 한강에 떼지어 노니는 철새는 삭막해진 도시 사람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하는 안정제다.
모든 시민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주는 자연의 일부가 소수시민의 장사 속으로 파괴당해서야 안될 일이다.
서울시는 뒤늦게 철새보호를 위한 감시·단속에 나서리라 한다. 한강개발사업을 진행중인 서울시가 대낮 버젓이 자행되는 도심의 자연학살행위를 그 동안 방치한 것은 무관심에서 빚어진 직무유기 아닌가.
한강변을 따라 널린 쥐덫, 하늘을 향해 아가리를 벌린 흉측스런 학살도구들이 어서 빨리 치워지기 바란다. 그리고 자연보호가 일상에서 생활이 되었으면 한다. <권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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