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 기자의 오늘 미술관] 로스코의 마지막 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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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 1970, 캔버스에 아크릴, 152.4×145.1㎝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몇 년 전 스위스 바젤서 여름마다 열리는 세계적 아트페어 ‘아트 바젤’에 갔을 때였다. 세계적 아트페어라지만, 화랑마다 부스를 열어 작품을 걸어두고 손님을 맞는 장면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걸려 있는 작품이 미술관급이고, 오가는 손님이 역대급 컬렉터라는 차이가 있을 뿐 여기도 시장이다.
페어장 중심 가장 목 좋은 자리엔 이 아트페어를 창설한 바이엘러 재단의 부스가 있었다. 크지 않은 부스 앞엔 경호원 둘이 서 있었고,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화랑의 개방형 부스와 달리, 판매하지 않는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한 두 명이 들어가 앉을 작은 공간엔 제단처럼 촛불이 두 개 켜져 있었고, 마크 로스코(1903∼70)의 그림이 한 점 걸렸다. 미술장터의 흥성스러움 속에서 ‘한 점’의 존재감이 컸다.

지난해 가을, 서울 한남동 리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한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망라한 소장품전 ‘교감’을 열었다. 불상과 불화ㆍ불경 전시실엔 로스코의 검은 추상화, 자코메티의 인물 좌상이 함께 놓여 예술의 종교적 가능성을 보여줬다.

로스코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추상미술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들의 관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2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로스코전이 열린다.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소장 회화 50점이 오는데 보험가액이 총 2조 5000억원”이라고 대대적 홍보 중이다. 로스코다운 전시를 볼 수 있을까…….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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