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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밍하고 시큼한 ‘혁명의 맛’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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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일본 평론가 가쓰미 요이치는 음식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사를 재조명한다

?중국 음식은 정치, 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왔다. 사진은 2013년 한 만두 가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녀간 뒤 만들어진 시진핑 세트 메뉴.

어떤 음식이든 다른 고장으로 넘어가면 그 땅에 맞게 현지화되기 마련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외국 음식도 그렇다. 그중에서도 중국 요리가 갖는 위상은 남다르다. 한때는 좋은 날에나 먹는 귀한 음식으로, 지금은 밥이 왠지 싫증날 때 간단하게 시켜 먹는 서민 음식으로 중국 요리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옆을 지켜왔다. 그러나 한국인이 흔히 먹는 자장면, 짬뽕이 중국에 없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진 얘기다. 일반적인 동네 중국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중국 요리는 실제 중국인이 먹을 법한 음식과 비슷한 구석조차 없다. 초밥, 커리, 스파게티 등 다른 해외 음식에 비하면 본토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중국 요리의 변신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일본의 평론가 가쓰미 요이치는 저서 ‘혁명의 맛’에서 “일본인은 어릴 적부터 중국 요리를 먹어 왔다”고 말한다. “일본인이 먹는 중국 요리는 전부 일본화한 맛이며… 일본에서 먹는 그 ‘라멘’은 본고장에는 없다.” 여기서 일본을 한국으로, 라멘을 자장면으로 바꾸면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기에 본고장의 중국 요리와 현지화된 중국 요리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묻는 가쓰미의 물음은 한국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

“중국요리란 뭘까?” 언뜻 간단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 요리는 다른 국가 요리와 달리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그 배경엔 다양한 문화가 있다. 중국은 서로 다른 환경이 뒤섞인 넓은 땅에 여러 민족이 부대끼며 수천 년을 살아온 나라다. 한족, 거란족, 여진족, 몽골 등 문화가 전혀 다른 온갖 민족이 왕조를 세웠다. 어느 민족이 패권을 쥐느냐에 따라 식문화도 바뀌었다. 그래서 가쓰미는 “여러 개의 중국”이란 표현을 쓴다. 일본 요리, 이탈리아 요리, 프랑스 요리 등 한 나라 요리의 범위 안엔 그 나라의 여러 지방 요리가 포함 되기 마련이지만 중국엔 “여러 개의 중국”에 걸맞은 여러 개의 음식이 있다. 중국 요리의 요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혁명의 맛 / 가쓰미 요이치 지음 / 임정은 옮김 / 교양인 펴냄 / 1만6000원

가쓰미는 문예학부를 졸업하고 포르투갈 리스본, 프랑스 파리 등지에서 미학을 가르치던 학자였다. 그런 그가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1968년이다. 베이징에서 미술품 감정 일을 맡은 것이 계기였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중국엘 갔다. 가쓰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 가본 데가 없을 만큼 여러 지방을 돌아다녔다.” 라멘, 볶음밥 같은 것이 대표적인 중국 요리라 생각하던 젊은 가쓰미에게 중국 각지의 기묘한 음식들은 충격을 안겨줬다.

‘혁명의 맛’에서 가쓰미는 풍부한 배경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음식의 변천사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파헤친다. “중국 요리의 특색은 다른 어떤 곳의 요리보다 시대와 함께, 그리고 정치적 분위기와 인간의 움직임과 함께 책장을 넘기듯 변해 간다는 것”이라고 그는 적었다. 송 왕조에서 청 왕조에 이르기까지 중국 음식의 변천사를 다룬 책 전반부는 각 왕조에 따른 정치나 사회 분위기가 어떻게 중국 음식에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준다. 청 왕조를 세운 만주족이 한족을 포섭하기 위해 만든 요리 만한전석, 오리 요리를 좋아했던 건륭제 때문에 베이징의 명물이 된 북경오리 등 재미있는 사례로 가득하다.

두루 알찬 책이지만 5장 ‘공산당과 혁명의 맛’부터 급격히 흥미가 더해진다. 앞 부분이 옛 문헌과 자료에 의존한 역사서 느낌이라면 5장부터는 가쓰미의 체험이 감칠 맛을 더하는 중국 여행기이자 회고록이다. 가쓰미의 체험담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할 뿐 아니라, 공산주의 이념이 중국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적나라하게 증언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문화혁명 당시 마을 자치회가 운영하던 거민식당이다. 거민식당은 배급권과 현금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공공 식당이지만, 식당이라기보다 이념 교육의 장에 가까웠다. 가쓰미는 직접 체험한 거민식당을 이렇게 묘사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오쩌둥의 석고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주위에도 태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민의 한가운데 선 마오쩌둥의 찬란한 위용을 그린 포스터, 그때그때 상황에 걸맞은 정치 투쟁 슬로건 따위가 벽에 빙 둘러 붙어 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식당에 들어가려면 석고상이나 포스터를 마주 보고 아침에는 마오쩌둥에 대한 충성을, 저녁에는 그날 하루 자신이 한 혁명적 행동을 바로 선 채 보고해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 음식 맛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초라한 음식을 먹을수록 부르주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이기 때문에” 음식은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중국인은 거민식당을 찾아야 했다. 행여 집에서 닭이라도 잡아 먹을라치면 이웃의 신고로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기 일쑤였다. 유서 깊은 고급 음식점은 “노동 인민 착취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홍위병이 마구잡이로 파괴했고 거민식당과 똑같은 음식을 팔아야 했다. 바로 그 거민식당의 “밍밍하고 시큼한 맛” “빈약하고 허전한 맛”이야말로 “혁명의 맛”이자 “평등의 맛”이었다.

문화혁명이 휩쓸고 간 잿더미 속에서 다시 일어난 것이 오늘날의 중국 음식이다.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개인의 음식점 경영이 허가되자 도시 곳곳에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가쓰미는 문화혁명 이후의 베이징 골목을 구석 구석 누비며 어떤 맛이 부활했고, 또 어떤 맛이 사라졌는지를 꼼꼼히 기록한다. 도시를 중심으로 음식점이 부흥하는 한편 상업이 활발하던 홍콩에선 동남아 요리, 프랑스 요리 등 해외 요리와 혼합된 독특한 중국 요리가 탄생했다. 홍콩을 통해 세계 각지로 전파된 중국 요리는 화교들의 손을 거쳐 해당 지역에 맞게 변했다.

일본에선 2000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번역본은 특별하다. 마지막 장인 9장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 덕분이다. 가쓰미는 이 장을 2012년에 한국어 번역본을 위해 특별히 썼다. 전 세계에서 이 9장을 읽을 수 있는 판본은 한국어판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한국어판 출간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난해 4월 17일 64세 나이로 작고했다.

글=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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