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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철이 철인만큼 이번주에는 동지·성탄절·세모·신년 등을 소재로한 시조들이 많았읍니다.
이런 소재들은 일상과는 다른 체험인 만큼 뭔가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해서 감동을 나눌만한 작품이 나올법 하지만 그런 시조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군요. 얼핏 생각하면 예상을 뒤엎는 일 같지만 실은 그래야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술창조에 있어서 또 하나의 비밀을 체득하게 됩니다
문호 톨스토이는 한소년이 혼자 깊은 산속을 가다가 큰 호랑이를 만난 비유로써 이 비밀을 설명한 바 있지요
이런 일은 좀체로 얻기 어려운 특이하고 경이적인 체험이므로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겠지만, 당시의 소변의 정신상황은 공포의 극한에 있으므로 소설이고 시고 간에 생각조차 할 수가 없읍니다
요행히 위기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 뒤에도 한동안은 그 일을 회상하기만 해도 공포로 몸서리칠 뿐입니다.
그러다가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고 정신이 안정된 다음에야 공포심은 사라지고 그 사실이 객관적 상황으로 인식됩니다.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작품의 소재로서의 체험이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객관화한 체험입니다.
체험의 군더더기를 말끔히 걸러내어 객관적 체험으로 바꾸는 한편, 그 속에서 가장 순수한 것만을 집어내는 승화작용을 거친 그 영혼의 알맹이가 우연한 계기에 영혼의 옷이라고 할 수 있는 형상화의 대상을 만났을때 비로소 시로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번 연말 연시에 얻은 체험은 앞으로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을 것입니다.
신문의 시사성 따라 세모의 시조를 몇편 골라봅니다
「미완의 노래」와「소망」은 다 같이 뜻과 같지 않게 한 해를 보낸 회한이 주제가 되어 있군요. 전자는 감상을 청각으로 표현함으로써 즉흥성을 극복하는 재분을 보였고, 후자의 비유도 그런대로 무난합니다
「성탄절」과「한 잎의 세모」는 즉흥성이 직설적으로 노출되어 위에서 말한 즉흥의 결함이 역력합니다
「한방가」는 수월하게 읽히는 시조. 이정도 실력이면 한차원 위의 경지에 도전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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