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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2의 눈…폐쇄회로TV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로스구이와 곱창전골로 이름난 서울 명동2가 이학의 점심시간.
6층 사장실에 앉은 사장 김장환씨(53)는 인터폰을 누른다. 1층의 지배인을 부른다.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는데 오늘 주방일이 좀 늦구먼.』
지배인 정영구씨(30)는 즉시 주방에 비상을 건다. 여종업원들에게도 서둘러 손님 맞을 채비를 지시한다.
김사장은 사장실에 앉은채 주방의 손놀림, 손님들의 출입상황, 1층에서 3층까지 입구안내원의 근무상황, 종업원들의 움직임을 훤히 파악하고있다.
층마다 설치된 CCTV(폐쇄회로TV) 카메라가 바로「사장님의 눈」이다.
지난해 2월 3백80여만원을 들여 CCTV 카메라 전문생산업체인 오리엔탈 전자공업에서 모두10대를 구입, 설치했다.
몇년전만해도 경찰서·금융기관·백화점·대기업 등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제2의 눈」이 이제는 음식점에까지 보급된 것이다.
설날 전야 서울 둔촌동 주공아파트 필립스상사 신박제상무(42)의 집. 복조리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대철(22·Y대)·김상훈(21)군이 벨을 눌렀다.
『딩동-.』곧이어『우린 복조리 필요없어요.』대문은 꿈적도 않은채 가정부인 듯한 여자의 음성이 도어폰을 통해 흘러나온다.
『예? 어떻게 복조리를 팔러온 줄 알고….』
『긴얘기 마세요. 오른쪽학생은 털모자를 쓰고 있잖아요. 복조리를 어깨에 메고….』
이군과 김군은 움찔 놀라 저도 모르게 두서너발 대문에서 물러섰다. 보이지 않는 시선에 의해 자신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문전박대는 안한다』는 우리의 미풍은 오늘의 서울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CCTV카메라를 생산하는 오리엔탈전자공업(사장 채수웅·45)은 최근매월 60여대의 도어비전을 팔고있다 (대당49만5천원·설치비포함). 어쩌면 그것은 그만큼 깊어가는 불신과 넓어져 가는 단절의 폭을 실증하는 것은 아닐까.
서울 논현동251 고급주택가, 하오9시. 승용차1대가 눈길을 조심스럽게 굴러 호사스런 집앞에 멈춘다. 승용차에서 청년2명이 내려 대문쪽으로 다가선다.
『삑-』인터폰이 울린다. 『경비초솝니다. 방금 웬 청년2명이 댁으로 갔읍니다.』『네 알고 있어요. 아빠 후배들이 세배왔군요.』
동네어귀의 경비초소에 설치된 CCTV카메라가 처음부터 낯선 승용차를 추격, 경비원이 집주인에게 알린 것이다.
이 동네는 지난해9월 25가구가 50만원씩 들여 CCTV 카메라 17대를 골목 요소요소에 세우고 경비초소엔 18대의 모니터TV를 설치, 외부인의 출입을 24시간 감시하고있다.
고객들로 북적이는 롯데쇼핑센터 매장. 마음대로 물건을 고르는 고객의 손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자의 눈에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비상관제실, 11대의 모니터TV는 각층 매장에 숨겨놓은 44대의 감시카메라가 보내는 장내 동태를 거울처럼 비춘다.
『A-원, 여기는 비상관제실, 3층 의류점에 상황. 블루진 점퍼차림의 10대소녀 2명 1층 3번 게이트로 향한다. 소지품을 검사해 볼 것. 정중히 대하라.』
『A-드리, 2층 동쪽매장, 남자손님이 담배를 피운다. 금연이라고 정중하게 알려라.』
CCTV의 기능은 범죄수사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롯데호텔 미국인 여디자이너 피살사건 때 호텔로비에 설치된 CCTV 카메라는 엘리베이터로 들어서는 20대 범인의 모습을 녹화해 경찰에 보여주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롯데호텔은 14대의 카메라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며, 모든 특급 관광호텔에도 1대 이상의 CCTV카메라 설치가 의무화 됐다.
CCTV붐은 최근엔 규모가 작은 슈퍼마킷이나 패션매장에까지 일고있다.
서울 충무로2가 패션스토어 김창숙부띠끄. 미니2층의 매장엔 CCTV카메라 2대가 3백60도회전하며 옷을 고르는 고객들을 비춘다.
40대 중년부인이 투피스 한벌을 골라 몸에 대본다. 모니터화면을 보고있던 판매원아가씨가 미소를 띤채 고객에게 다가간다.
『사모님 한번 입어보세요. 그리고 이 화면을 보세요.』
중년부인은 TV화면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에 순간 탤런트가 되었나 싶은 착각에 빠진다. 거울대신 TV화면을 통해 옷매무새를 보게 하는 상술(상술)-. 영상이 지닌 착각의 마력을 이용하고있는 것이다.
김부띠끄의 정구익사장(41)은『40평 넓이의 매장을 4명의 판매원이 관리하다보니 매달 10여건이나 되는 도난사건을 감당할 수 없었다』며『CCTV카메라로 도난예방과 판매촉진의 2중 효과를 보고있다』고 설명한다.
서울 원효로2가 원동교회 별실. 40명 남짓한 신도들이 목사 아닌 TV세트 앞에서 예배를 본다.『찬송합시다.』 TV화면속 목사가 말한다. 신도들은TV를 통해 들리는 피아노반주에 맞춰 찬송가를 부른다. 예배시간에 늦거나 어린애를 동반한 신도들을 위한 CCTV예배다.
CCTV는 보안·상용 외에 이같이 대규모 복사행사(복사행사)의 수단도 되고있다.
서울 종로1가 J예식장 중앙대기홀. 동료직원의 결혼식에 참석한 D산업 총무과 직원들은 자동판매기에서 빼낸 코피를 마시며 주말등산계획을 짜고있다.
눈은 벽에 걸린 TV화면에 둔채. TV화면은 안에서 진행중인 결혼식을 비치고있다. 잠시 후 일행중 한명이『식 끝났어. 올라가 사진이나 찍지.』모두들 자리를 뜬다.
자리를 함께 한다는 축복의 공감대보다 절차와 격식만 남은 결혼식.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된 과학기술, 그러나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사용될 때 인간은 전자눈의 포로가 되고 더 깊은 단절의 늪에서 비인간화의 길을 재촉할 것이 틀림없다.

<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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