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할일, 학생이 할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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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적학생의 복교를 허용한「12·21조치」는 세모에 쫓기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모처럼 포근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어떻게해서, 처벌위주의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던 당국이 방향전환을 결심했는지 자세히는 알수 없으나 이유와 배경이 어디있건「잘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학생들과 당국사이에 팽팽한 긴장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는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로울 수가 없으며 악순환의 연속을 남을 뿐이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당위의 정도로 돌아선것을 보고 안도를 느낀다.
이른바「학원사태」대학의 현실참여 발언과 그에 대처하는 정부당국 사이에 빚어지는 마찰과 갈등은 그동안 우리사회의 구조적불안요인으로 내재해왔다.
그것은 학생개인과 그가정의 불행이었을 뿐만아니라 대학의 불행, 나아가 우리사회·국가의 불행이기도 했다.
당국의「일벌백계」「근절」 호통에도 학원내 시위는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돼왔고 갈수록 파격한 양상을 .띠어왔다.
이같이 만성화해가는 학원사태에 대처하는 당국의 자세는 지금까지 처벌위주의 규범적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시위를 주동하거나 적극가담한 학생들을 찾아내 학생신분을 박탈하고붙잡아 재판에 넘기고 입대를 시키는 일을 반복해왔다. 이렇게 강압적인 대처방식은 근원적으로 교육의 포기이며 보복이라는 인상밖에 주지못했다. 보복에대한 반작용으로 또다른 소요사태가 촉발되고 응어리는 점점 커지는 악순환의 경향도 없지않았다.
과정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진 대학당국이나 교수의 의견은 거의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대학의 재량과, 자율에 맡겨져야할 학내문제가 학원밖 제3자의 의지와 판단과 재량에 의해 좌우되면서 가장큰 책임을 느끼고 고민해야할 대학과 교수들은 정작 그것을 자신들의 책임으로 느끼려하지않는 기이한 풍조까지 생겨났다.
신뢰와 존경으로 이어져야할 사제관계와 대학교육의 기반은 이같은 학원의 타율구조에서 사실상 붕괴된것이다.
당국은 이번조치를 통해 암으로 학생지도를 대학이 책임지고 선도위주로하도록 했다. 「대학의것을 대학에 돌려」학교와 교수들에게 책임을 지운것이다.
대학과 대학인의 어깨는 그만큼 무거워졌다. 골치아프다고 문제를 문교부에 밀고 당국에 책임을전가하던 이제까지의 타성이 더이상 통하지않게됐다. 그동안 행정의 타율에 익숙해진 대학이 갑자기 주어진 자율을 얼마만큼 소화할수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불신과 냉소로 허물어진 대학사회의 기반을 재건하는 일은 학교당국과 교수·학생들의 3위1체적 노력에 달려있다.
젊음은 본래 뜨거운것이고 뜨거워야만 하는것이다. 대학이 뜨거운 젊음을 수용하고 분출하는 젊음의 에너지를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도리어 그것을 창조적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혜와 아량과폭을 가져야한다. 그 에너지가 바로 우리의 장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범같이 키워야한다. 눈치나 살피는 쥐새끼, 꼬리치는 강아지로 키울생각을 버려야한다. 이것이 복교조치이후대학이 져야할 책임이다.
당국이 말하는 자율도 명실이 갖춰진것이기를 진실로 바란다. 지난날 말로만 그친 관용과 화합조치를 주기적으로 경험해온 탓으로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괴의를 가질만큼 불신의 병이 깊다. 말은 버젓해도 속셈은 따로 있었던것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
모처럼의 화합조치가 실효를 거두기위해서는 이면에 가려진「계산」이나「복선」이 없어야한다.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는 성실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명실이 같이하는 보환을 기대할수있다.
대학은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창조적지성의 요람이다. 세속적 이해나 혼돈에서 떠나 고고한 상아탑이어야 하는것이 그이상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대학은 내일을 준비하는 상아탑의 이상에서 멀리벗어나었었다.
그것은 학생이나 대학당국이나 정부,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고 말할수 없다. 우리사회전체의 책임이며 고민이라 할수있다. 역사의 한 과정이라고도 보여진다. 그러나 이같은 대학의 혼란을 당연한것으로 볼수는 없다. 기성세대와 정부가 해결을 주도해야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학생들도 이제 우리사회가 시위나 성토로 움직여지기에는 너무 커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있다.
학생들이 지적하는「현실의 모순」도 학생들의 힘만으로 바로잡기는 불가능하다.
현실을 비판하는 안목으로 스스로를 비판하면서 내일에 대처할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는것이학생의 소임일것이다.
당국의 정도회귀가 진실로 명실이 함께하고 학생들의 현실비판이 자아비판과 병행할때 학원사태의 악순환은 해결의실마리를 찾을수 있을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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