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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산」에 학문적 연구 절실|KBS 생방 관련 심포지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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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KBS가 벌인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은 국민 대중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충족시킨 대사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제 민족이산에 대한 다각적인 학문적 연구의 수행이 이뤄져야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는 KBS의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방송과 관련, 15∼16일 여의도 만남의 광장 스튜디오에서 「민족이산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문제제기에 나선 김경동교수(서울대·사회학)는 「민족이산현실과 과제」를 통해 『이번 캠페인은 「민족이산」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비극의 상처를 되새겨 주었을 뿐 아니라 민족 이산과 이산가족 되찾기의 의미를 이성적인 성찰을 통해 분석·설명·이해해야한다는 깨달음을 던져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문적 연구를 위한 기본 틀로 이산의 단위를 친족에 한정시키고 이산의 유형·요인·과정· 결과 및 재회와 적응을 연구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특히 KBS 생방송을 통한 친족재회는 극적이고 기대하지 않던 상봉과 재결합이므로 재회는 했으되 갖가지 사회 경제적 이유로 말미암아 재결합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이들, 재결합은 했으나 법적·사회적· 경제적·문화적·심리적 측면 등에서 부적응의 현상과 조정의 필요가 나타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내다보고 방송으로 친족임을 확인하고도 서로 찾지 않거나 찾고도 상봉을 피하거나 재회하고도 재결합을 원치 않은 실례를 들었다.
김교수는 『민족의 재통합과 흩어진 동족의 귀환에 의한 재결합은 반드시 이룩해야할 과제』라고 못박고 민족이산의 역사적 전개와 실재를 사회과학적으로 체계 있게 분석·검토해 민족재통합의 길을 여는데 이바지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족이산의 역사와 현황」을 발표한 이광규교수(서울대·인류학)는 『개인과 가족의 헤어짐이 자의가 아니라 격동하는 사회와 국가의 소용돌이에서 비롯됐다는 관점에서 볼 때 민족이산은 한일합병 전 연해주와 하와이주의 계절 이민·노동이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이산을 ▲1864∼1910년(한일합병이전) ▲l910∼20년 ▲20∼31년 ▲32∼37년(대륙침략) ▲37∼45년(해방까지) ▲45년 해방 ▲50∼53년까지의 동란 등 7기로 나누고 제1기에는 노동자의 이주, 제2기는 합병으로 한국의 농민들이 영세화되자 생활고를 피해 포주로 이민을 가는 이가 많았고, 제3기는 일본으로의 노동이민, 제4기는 일본의 상해침략이후 시도된 대륙정책으로 인한 만주·일본에로의 이주, 제5기는 모집동원·국민징용령에 의한 강제동원, 제6기는 해방 후 국내혼란으로 귀국의 중단, 제7기는 피난으로 인한 이산으로 들었다.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대한 시민참여와 방송의 공공성」에 대해 발표한 추광영교수 (서울대·신문학) 는 『KBS의 캠페인은 대중의 절실한 내적 욕구를 충족시켜준 획기적 기획』 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대중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욕구를 파악, 충족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공영방송의 종국적인 소유자이며 주인인 국민대중의 커뮤니케이트권을 주체로서 행사할 기회를 제공했다는데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추교수는 KBS가 국민의 참여와 쌍방적 교류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통해 공신력과 신뢰를 회복하면서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분석하면서 앞으로도 국민의 다양한 정보에 부응하는 양질의 서비스로 부단히 제공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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