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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조씨 고문치사사건| 미망인은 그때 쇼크로 아직치료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회에서 고문방지법안이 통과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한일이지요 다시는 아빠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지요』
경찰의 수사를 받다 수사관의 폭행으로 숨진 한일합섬경리이사 김근조씨의 미망인 박혜경씨(38)는 지금도 그때의 쇼크로 머리가 아프고 가슴에 울렁증이 그치지않아 병원을다니며치료를 받고있다고했다.
사건직후 살고있던 서울상도동에서 주위의 눈을피해 부산시내 K아파트 803호로 거주지를 옮긴 박씨는 『악몽을 잊고 아이들과 조용히 살고싶다』며 지금도 동네에선 자기가족들이 누군지를 알지못한다고 말했다.
80 정부의 9·27 조치에따라 어쩔수없이 팔아넘겨야했던 땅을 다시 찾기위해 4대기업이매각→재매입→해약→환매의 수법을 동원했던 이사건은 국민의 지탄과 함께 지난3월 수사과정에서 피조사자가 고문에의해 목숨을 잃는등 경찰사상 지울수없는 오점을 남긴 사건이었다.
『그양반이 비명에 세상을 떠나고난뒤 친정어머니 마저 쇼크로 몸져눕더니 지난10월12일62세로 숨을 거두셨읍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온집안이 풍지박산이 되었다는 박씨는 세상에서는 1억원의 보상금을 받은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지금껏 한푼의 보상금도 받지못했다고 했다.
김이사의 유가족으로는 미망인 박씨와 국민학교에 다니는3남1녀. 지금 살고있는 아파트는 싯가 5천만원짜리 47평형으로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과 김이사가 생전에 회사동료와 합작으로 사두었던 서울영등포의 빌딩전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박씨는 말했다.
박씨가 부산으로 옮긴것은 친정아버지가 부산여고교장으로있어 아무래도 의지할곳이 이곳이기때문이라는것.
『새벽에 나갔다 항상 아이들이 잠든뒤에 들어오던 아빠였지만 무척이나 아이들을 사랑했어요. 아직은 나이들이 어려 크게 슬픈기색이 없지만 언젠가는 아빠가 왜 죽었는지를 물어오겠지요.』
박씨는 구김살없이 공부를잘해주는 아이들이 고맙다며 애써 눈물을 감추었다.
당시 김이사의 수사를 맡았던 치안본부특수수사대 김만희경위(38)는 지난10월7일 폭행치사및 독직폭행죄로 징역4년이 확정되어 복역중이며 김경위와 한팀이되었던 나기선경사(38)는 징역1년,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고 현재 은둔생활을 하고있다.
「고문의 산실」처럼 한때 세인의 뇌리에 박혔던 「특수수사대」 는 이해구 현치안본부장이 부임하면서 이미지쇄신을 위해 그 이름을 없애버리고 「수사1·2대」로 개칭했다. 수사대요원도 전원교체, 이본부장이 직접 서울시경과 전국경찰서에서 선발한 경찰관으로 구성되었다.
굴지의 관광호텔과 국제의류종합전시장을 세우겠다는 창업주(고김한수회장)의 유지에 따라 변칙적으로 재매입했던 부산시초량5동1199 ,부산역광장 오른쪽의 한일합섬땅(5백평14평) 은 현재 토개공소유로 넘어갔고 이중 2백29평이 유모씨에게 보증금6백40만원, 월세1백20만원에 임대되어 인도어골프장으로 쓰이고있다.
토개공은 부산시와 협의. 고도 상업지구인 이곳에 오피스빌딩 신축등 도시재개발에 적극 참여할 투자자에게 공매할 방침.
부산시 동대신동2가 54, 55소재 2백41평의 미원땅은 사건후 부산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부지로 편입되어 도로쪽으로 50평이상이 잘려나갈 운명이다.
그러나 이땅은 구덕터널∼봉주터널까지 폭25m로 확장되면 바로 대로변에 위치하게 되어비록 쪼가리땅이지만 효용가치가 크다는것이 토개공부산지사 이상윤매각계장의 설명이다.
부산시중일동940의3 별장지대의 벽산그룹땅 3천1백87평은 벽산측의 관리인 이봉순씨(81·여)가 혼자 지키고있을뿐 토개공에 환원된뒤 아무도 찾는이가 없다.
환매당시 벽산에서 이땅에 심어놓았던 향나무·황금편백·회양목등 고급정원수 3천여그루를 내년5월까지 이식토록 계약했으나 벽산측이 마땅한 이식장소를 마련못해 고심중이라는 것. 이곳의 정원수는 한그루 에 1천2백만원을 홋가하는 초년생 향나무10여그루를 비롯, 나무값만도 땅값의 몇배가되는 30억원어치에 이른다. 토개공은 내년 하반기에나 공매처분할 계획. 경남양산군웅상면소주리 8만여평의 효성그룹땅은 순수하게 초지를 조성, 낙농단지로 만들원매자를 찾고있다.
기업의 비업무용토지 재매입부정사건이 지난지 8개월. 그러나 홍역을 치른 사람들이 아직도 이들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것같다는게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다. <이용우기자>@@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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