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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진기자의맛난만남] 아나운서 이금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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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좁은 골목 안에 숨은 작은 밥집. '추리닝' 바람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도 "밥 좀 주세요"하고 불쑥 찾아갈 수 있는, 막내 이모네 부엌 같은 곳.

"근사한 레스토랑은 떠오르지 않고 다녀본 적도 거의 없어서"라고 하더니 "촌스럽잖아요, 제가"하고 덧붙인다. 아나운서 이금희가 고른 식당은 서울 홍대 앞 번화가 한쪽의 고등어구이집. 문 앞에는 '밥집'이란 간판이 붙어 있고, 가정집을 개조한 좁은 내부로 들어서면 된장찌개 냄새, 생선 굽는 냄새가 구수하다. 지난해 겨울, 오랜만에 만난 대학 후배들이 "선배가 좋아할 집"이라며 데려왔단다. 담백한 상차림이 마음에 쏙 들어 그 뒤로도 몇 차례 친구들과 함께 왔다.

"미식가는 아니에요.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다 맛있어 하니까. 반찬이 없으면 밥을 물에 말아 김치만 얹어도 달게 잘 먹지요."

성격 역시 무던하고 편안하다. 화려한 쇼나 딱딱한 뉴스보다 '아침마당' '6시 내고향' '인간극장'같이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주로 맡아왔다. 좋은 진행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단다. 날카롭고 차가운 아나운서의 기존 이미지와는 거리를 둔다. '튀어야 살아남는다'는 방송국에서 수수하고 친근한 진행자로 입지를 굳혔다. 재빠르게 유행을 좇는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소박한 밥집이 오히려 특별한 것과 비슷하다.

따끈한 돌솥밥과 두부조림.더덕구이.된장찌개 등 반찬 7~8가지가 푸짐하게 상에 오른다. 메인 메뉴인 간고등어구이는 손바닥 넷을 합쳐 놓은 크기다. 경북 안동시 풍천에서 전통방법으로 숙성한 최상급 간고등어란다. 숟가락으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을 복스럽게 떠 입으로 가져간다. 손맛이 듬뿍 담긴 반찬도 반찬이지만, 무엇보다 밥이 달아 이 집을 좋아한다. "너무 맛있죠? 맛있는 음식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해"라고 말하는 표정이 밝다.

먹는 즐거움을 최고로 치는 그가 올해 초부터 독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5월부터 석 달가량은 저녁으로 우유 한 잔, 점심으로 밥 세 숟갈 분량만 먹고 버텼다. 체중이 10kg 이상 줄고 '이금희 다이어트'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다"며 고개를 젓는다. 몸에 무리가 와서 9월부터는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있다. 대신 적절한 양을 지키고 매일 한 시간 이상 빨리 걷기 운동을 한다. 운동이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으면서 무겁던 몸은 개운해졌고 목소리도 한층 밝아졌다.

"이금희 아나운서마저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굴복했다"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을 건넸다. 체중계 저울 눈금으로 아나운서의 '자기 관리'와'프로의식'을 재려는 편견에 꿋꿋이 맞서 주었으면 했던 생각에서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건강을 위해 시작한 다이어트"라고 설명한다. 평소 대단히 건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지인이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갑작스러워 충격이 컸다. 건강을 과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하게 됐고 일단 몸을 가볍게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란다.

간이 적당히 밴 고등어 맛을 감탄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시계를 보며 일정을 확인한다. 스스로 '별보기.달보기 운동 중'이라 할 정도로 스케줄이 빡빡하다. 소문난 워크홀릭(일중독자). 5~6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겸임 교수로 강의도 한다. 들어오는 일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이 너무 좋기 때문"이란다.

최근 시작한 인터뷰 전문 프로그램 '파워인터뷰' 이야기를 꺼내며 동그란 눈을 반짝인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을 때마다 새내기가 된 기분이다. 긴장되고 두려우면서도 설레고 신이 나는 복합적인 감정. 10년을 넘게 따라다니는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항상 "방송만큼 좋은 남자를 못 만나서"라고 답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스웨터를 떠주고 못 부르는 노래라도 들려주고 싶잖아요. 제게는 방송 일이 그런 애인이에요. 어떻게 하면 이 애인의 맘에 들까,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 즐겁게 고민한답니다."

길지 않은 인터뷰에서 "감사하다"와 "행복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따라 어린이노래자랑 프로그램인 '누가 누가 잘하나' 녹화장에 갔다가 아나운서 언니의 멋진 모습에 반했다. 중.고교 대학생활 내내 학교 방송반으로 활동하며 꿈을 키웠다. 1989년 KBS 공채 16기로 입사해 처음 맡았던 프로가 바로 '누가 누가 잘하나'의 후신인 '전국어린이동요대회'였단다.

"꿈을 이뤘잖아요. 정말 운이 좋았지요. 더 바랄 게 없답니다. 돈을 받아가며 사람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을 가진걸요."

글=신은진 기자 <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어머니와 고등어'

"어머니는 칠십 평생 자식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고맙다는 말…못했습니다"라는 글귀가 식당 문 앞에 붙어있다. 식당 주인이자 주방장인 차광득(74) 할머니의 구수한 손맛을 찾아온 손님들로 좁은 가게는 항상 북적인다. 대표메뉴인 '안동 이씨 간고등어 정식상'이 1만8000원(2인분). 점심시간에는 1인용 '간고등어 점심상(7000원)'을 주문할 수 있다. 극동방송국에서 홍대 방향으로 20m 내려가 세븐일레븐 편의점 골목으로 들어가면 '니코니코' 옆 막다른 골목 안으로 간판이 보인다. 초행길이면 헤매기 십상. 전화로 위치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02-33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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