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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IS의 고대 유물 파괴는 문명 향한 ‘참수 행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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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02면

이라크 모술의 한 박물관에서 아시리아의 수호신 라마수 석상을 파괴하는 IS 대원. [AP=뉴시스]

중동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점령지인 이라크 북부 도시 모술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문화 테러를 자행했다. IS 무장대원들은 소중한 고고학적 유물이 전시된 모술박물관에 난입해 대형 망치와 드릴로 수천 년 된 고대 석상과 조각들을 마구 파괴했다.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이 순식간에 한 줌의 돌 무더기와 가루로 변했다. 심지어 IS는 이런 야만적인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자랑이라도 하듯 비디오로 촬영해 인터넷에 5분 정도 분량으로 공개했다. 이에 앞서 8000여 점의 고대 서적이 보관된 모술도서관에 불을 질러 희귀 고대문서 2000여 점을 불태우기도 했다.

 파괴된 화강암 석상과 대리석 조각들은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산정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뉴욕타임스와 BBC방송에 따르면 이를 분석한 중동·서구의 고고학자들은 훼손된 고고학적 유물이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 제국과 기원 1~2세기 하트라 왕국의 역사를 보여주는 희귀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의 입구인 네르갈 문을 장식했던 수호신 라마수의 석상이 가루로 변한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에 황소의 몸통, 독수리의 날개로 이뤄진 라마수 석상은 고대 아시리아 땅에 남아 있던 유일한 진품이었는데, 이게 이번에 파괴된 것이다. 다른 작품은 모두 해외로 유출됐다.

 부서진 하트라 유물은 대체가 불가능한 유일본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하트라 유적은 19세기 서구 열강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열풍이 끝난 뒤에야 뒤늦게 발견돼 출토 유물의 대부분이 모술박물관에 보관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리아는 구약성서에 고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로 기록돼 인류문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모술 근처에서 교역국가로 번성했던 하트라는 고대 로마 제국에 맞선 보루로서 중근동 지역과 아랍인의 초기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수호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소중한 고고학적 문화유산을 마구 파괴한 IS의 야만적 행동은 인류에 대한 모욕이자 도전으로 규탄받아야 마땅하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미덕의 권장과 악덕의 예방 #1’이라는 제목이 붙은 선전 비디오에 등장한 IS 대변인이 이번에 파괴한 유물을 “우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6세기에 세워진 바미얀 석불을 “우상”이라며 파괴한 것과 같다. 극단적인 주장을 앞세운 궤변으로 어이없는 반달리즘을 합리화하려는 IS의 행동은 국제사회 모든 구성원의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문화유산 파괴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IS의 반달리즘은 자신들이 얼마나 반문명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인간적인지를 스스로 드러낼 뿐이다.

 국제사회는 IS 점령지에 산재한 고대 유물과 유적지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라크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호할지 논의할 회의를 긴급 개최하도록 요청했다. 유네스코의 성명처럼 IS의 모술 유물 파괴는 문화적인 비극을 넘어선 중대한 만행이자 도발이다. 이는 종교 갈등과 폭력적인 극단주의, 그리고 이라크 분쟁을 부채질하는 주요 글로벌 안보 사안이기도 하다.

 문화유산 파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잔학행위다. IS는 그동안 잔혹한 폭력을 앞세운 ‘공포와 충격’ 전술로 내전 중인 시리아와 이라크·리비아 등에서 독버섯처럼 세력을 확장해 왔다. 점령지에선 무고한 소수 종교·종파를 박해하면서 과거 인종학살에 비견되는 학살을 저질러 왔다. 이뿐만 아니라 외국인 구호요원·기자 등을 인질로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다 여의치 않으면 서구문명을 단죄한다는 궤변으로 살해했다. 또 동성애·간음 등을 이유로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공개처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치마가 짧다거나 옷 색깔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마구 총질을 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IS의 악행은 이제 극에 달했다.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방관은 IS를 부추길 뿐이다.

 유엔 안보리는 IS를 규탄하는 데 머물지 말고 이들을 뿌리 뽑을 국제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IS를 인간의 존엄성에 도전하며 인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공동의 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뿌리 뽑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강구해 실행해야 한다. 미국은 오는 4월 모술 탈환 작전에 나설 계획이다. IS를 격퇴하고 인류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 국제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손을 맞잡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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