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박 대통령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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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부 당시 이병호 후보자 이병호 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2차장(원 안)이 27일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사진은 1995년 1월 당시 안기부의 청와대 업무보고 모습. 왼쪽부터 이 2차장, 정형근 1차장, 권영해 안기부장, 김영삼 대통령. [중앙포토]

이병호(75) 신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대사님”으로 불린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강의했던 울산대에서도, 육사 동기생(19기)들 사이에서도, 그를 기억하는 국정원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이 후보자가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그가 정보기관에 종사했던 경력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후보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정통 정보맨이자 안보전문가로 꼽는다. 그는 1970년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 입사해 27년간 정보기관에서만 근무했다. 96년 말 퇴직한 뒤 이번이 18년 만의 복귀다.

 그래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정치와 무관하고 정보기관 특유의 전문성을 살린 인사”라며 “사실상의 국정원 내부 승진인사”라고 말했다.

 육사를 졸업하고 장교이던 그가 정보의 길에 들어서게 된 배경은 영어였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육사 생도 시절부터 영어에 흥미가 있어 공부를 하다 보니 미군들과 회의할 때 통역하는 수준이 됐다”며 “중앙정보부 산하의 정보학교에 영어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며 제안이 왔고 이를 수용해 중령으로 예편하고 (중앙정보부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정보학교 영어강사를 하다 안기부 본부로 옮겨 국제국장, 주미 공사를 거쳐 해외파트 담당인 2차장을 지냈다. 그의 후임이 이병기 비서실장이다. 안기부 2차장을 주고받았던 두 사람이 이번에 각각 국정원장과 비서실장이 된 것이다. 27일 그와 어렵사리 통화가 됐다.

 -언제 통보받았나.

 “그걸 밝히기는 곤란하다. 안보 균형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장으로 내정돼 중차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박 대통령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전혀 없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후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선 “특별한 연이 없기는 한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대답을 피했다. 그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여러 요인들을 철저히 식별해 내고 대책을 앞서서 강구하는 게 정보기관 본연의 일”이라며 국정원법에 명기된 대로 국정원을 이끌겠다고 했다.

 주변에선 그를 강직하고 보수적인 인사로 평한다. 평소 사석에서 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인 김현희씨가 조작된 인물이 아니냐는 농담을 누군가 하면 정색을 하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북한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가 초빙교수를 지낸 울산대의 유종선(국제관계학) 교수는 “정보기관 출신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북한학과 국제관계학 과목을 강의했는데 학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훌륭한 교수님”이라 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에선 언론기고문 등에서 나타난 그의 보수성향을 문제 삼기도 했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부대변인은 “안기부 시절 공안만능주의적 시각을 가진 편향된 인사로 국정원 개혁을 이끌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는 2009년 2월 모 일간지에 “용산 사건과 유사한 폭동이 만에 하나 뉴욕이나 파리·런던 등 다른 선진국 도심에서 발생했다면…”이라고 기고해 용산참사를 ‘폭동’으로 규정한 일이 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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