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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정조법'유부녀만 처벌 … 1953년 간통죄 1표 차로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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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간통죄의 모태는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3호로 공포된 이른바 ‘정조법(貞操法)’이다. 당시엔 유부녀와 그 상대방(상간자)만을 대상으로 6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처벌했다. 부부 가운데 여성의 성(性)적 신실의무 위반만 불평등하게 처벌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제정된 조선형사령도 부인과 그 상간자의 간통을 2년 이하 징역형으로 처벌했다. 그 형량은 지금까지도 유지돼 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53년 첫 형법 제정 때 ‘간통죄’가 적시됐다. 당시 남편의 간통도 처벌하는 남녀 쌍벌주의 및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하는 친고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정부안이 국회의원 재석원수(110명)의 과반수(56표)에서 딱 한 표 많은 57표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1960~70년대에는 간통죄가 주로 연예계 ‘치정사건’을 통해 세간의 조명을 받았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간통을 저지른 여배우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62년 영화배우 최무룡·김지미씨 커플은 당대 톱스타가 간통 혐의로 고소당해 파장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다. 최씨의 부인이자 역시 배우인 강효실씨가 김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해 최·김 커플은 일주일간 유치장에서 살았다. 80년대 초반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여배우 정윤희씨가 당시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과 정을 나누다 조 회장의 부인으로부터 간통죄로 고소당해 구속됐다. 이후 84년 조 회장과 결혼했다.

 1980~2000년대에는 간통죄 폐지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85년 형사법 개정특별위원회 소위원회가 간통죄를 폐지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실제 95년 형법 개정 때 반영되지 않았다. 2010년에는 법무부 장관 자문기구인 형사법개정특별분과위원회가 간통죄 폐지 의견을 내놨지만 역시 형법에서 간통죄 조항을 지우지 못했다. 폐지 의견이 제기될 때마다 여성계 및 보수단체 등의 거센 반대여론에 부닥쳤다. 이들은 일부일처제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성 관념이 문란해져 여성 보호의 방패막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여성 지위 향상 등 남녀 성평등이 확산되면서 90년대 이후 여성계에서 오히려 폐지 목소리가 나왔다. 간통죄 구속기소율이 고소사건의 10% 미만이라서 형벌로서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신 여성에게 ‘낙인’을 찍는 효과가 커 애초의 여성 보호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탤런트 옥소리씨는 2007년 남편인 박철씨로부터 간통죄로 피소되자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에 간통죄 위헌 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2008년 헌법재판소는 위헌 4명, 헌법 불합치 1명, 합헌 4명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 위헌정족수(6명)를 넘기지 못해 간통죄 조항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간통죄 위헌 결정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입법부가 관련 법을 정비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전학선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그간 숱하게 위헌성 논란이 있었던 만큼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해결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만약 국회에서 개정했다면 수천 명이 무죄라며 재심과 형사 보상을 청구하는 혼란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간통죄는 유교권인 아시아에서도 대만·필리핀 등의 국가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 대만은 간통죄 법정형이 우리보다 낮은 1년 이하 징역이다. 중국은 협박을 통해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에만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고, 일반 부부의 간통은 처벌하지 않는다. 일본은 47년 간통죄를 없앴다.

 서구 국가들은 이보다 더 앞서 간통죄를 폐지했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 간통죄 처벌 규정을 없앴다. 무려 224년 전이다. 이후 간통죄를 잠시 되살렸다가 1975년 형법 개정 때 다시 폐지했다. 덴마크(1930년)·스웨덴(1937년)·오스트리아(1996년)까지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부분이 간통죄를 폐지했다. 미국은 52개 주(州) 가운데 20여 개 주에 간통죄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처벌사례가 거의 없어 사문화된 상태다.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중동지역 이슬람권 일부 국가에선 간통죄를 중벌로 다스리고 있다. 이란의 경우 간통한 여성은 가슴까지, 남성은 허리까지 땅에 묻고 돌팔매질하는 처형을 최근까지도 집행했다.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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