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준금리 11.5 → 20%로 올려 … 한해 15% 치솟던 인플레 잡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사공일 본사 고문(왼쪽)이 미국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에서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장과 세계 경제 현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욕=안정규 JTBC 기자]

사공일(75) 고문과 폴 볼커(88)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대담은 강렬했다. 대공황과 브레턴우즈체제, 살기등등했던 1970년대 인플레이션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격동의 한 세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키가 2m가 넘는 현대 경제사 거인의 분석은 간단하게 몇 세대를 뛰어넘곤 했다. 예컨대 요즘 중앙은행들의 바람대로 물가가 매년 2%씩 오르면 30년마다 물가가 두 배로 뛴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볼커는 전설이 된 인플레 파이터다. 인플레가 15%로 치솟으며 미국 경제를 집어삼키던 79년 Fed 의장으로 기용됐다. 1년 새 기준금리를 11.5%에서 20%로 올리는 초강수로 인플레를 잠재웠다. 볼커의 전략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볼커의 Fed가 인플레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나서야 방만한 지출을 멈췄다. 그때부터 인플레 수치는 수직 하락했다. 이후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눈앞의 가격보다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 중앙은행가들의 행동강령이 됐다.

볼커가 확립한 중앙은행의 독립성도 후대의 모델이 됐다. 볼커는 긴축을 풀라는 정치권의 압박을 견뎌냈다. 볼커를 지명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선거에서 졌지만 미국은 인플레 불길에서 벗어났다.  

87년 이후 세계금융의 커튼 뒤로 사라졌던 볼커는 금융위기와 함께 경제정책의 심장부로 복귀했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아 ‘볼커 룰’로 불리는 오바마 정부의 은행개혁안을 주도했다. 오늘날 금융시장이 자율규제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그의 진단이 규제시스템 강화로 이어진 것은 필연적이다. 볼커 룰이 2017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에 엄격한 칸막이가 설치돼 금융산업은 대전환을 맞게 된다.

 Fed에서 물러난 볼커는 여러 대형 부패사건에 대한 조사를 이끌었다. 엔론 스캔들, 스위스 은행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예금 횡령 혐의 등이다. 그가 국제금융계의 ‘미스터 클린’으로도 불리는 이유다.

 볼커가 평생 일전을 벌여온 대상은 인플레와 금융기관의 방종, 부패로 압축할 수 있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이 거장의 최근 관심사도 만연하고 있는 부패다. 그는 거대한 로비산업을 지목하며 미국 사회에 합법화된 부패가 많다고 개탄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사진=안정규 JTBC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