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체면찾기로 줄달음…|아쉬움 남긴 예산안심의|일관성없는 논리로 시종|협상 임하는 여야 자세에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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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상 처음이라는 동결예산을 다룬 올해의 국회 예산심의 역시 사상 처음이라고 까지는 할수없더라도 매우 기이한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예산안처리를 둘러싼 여야간의 3일3야의 심각한 정치 협상이 끝내 결렬되고 말았는데도 결렬에 따른 파국이나 경고 또는 긴장의 분위기가 별로 없다는 점도 과거엔 거의 볼수 없었던 점이고, 협상에 임하는 여야의 자세나 논리가 이번처럼 일관성이 없었던 것도 기이한 일중의 하나다. 또 예산심의과정을 통해 거의 하나도 얻은게 없는 야권에 허탈감이나 반성의 분위기가 적은 것도 기이하다면 기이한 일이다.
2일 예결위를 거쳐 본회의가 확정한 새해예산안은 국회의 미세한 손질이 가해지긴 했지만 거의 정부 원안 그대로다. 국회가 손질한 세출삭감 3백4억원은 전체의 0.3% 이는 80년의0. 5%, 82년의0.2%, 83년의 1%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세입삭감을 수반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는 다르다.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전재정을 지향한다는 정부·여당의 의지는 국회심의과정에서 늘어난 3백4억원의 흑자폭만큼 더 강화된 셈이다.
반면 내년에 예상되는 흑자의 일부를 국민부담의 경감에 돌리자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반영된게 없다.
이 같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인 여야의 자세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결예산인만큼 세출에는 결코 손댈 수 없다는 것이 당초 여당의 방침이었다.
이에따라 야당은 세입에는 융통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며 고전적 방식(?)대로 세법개정을 통한 세입축소를 예산심의의 주요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여당은 협상과정에서 뒤늦게 방향을 바꾸어 세입은 전혀 손댈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세입 원안규모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며, 이것은 협상대상이 될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대신 세출은 다소 조정하여 어느 정도 깎는 것은 협상해 보자는 자세를 취했다.
이 같은 여당의 입장은 만성적인 재정팽창과 몌별하기 위해 정부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적자로 꾸려져온 나라살림을 건전재정으로 이끌겠다는 새해예산안의 정신을 생각하면 꼭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새해예산안의 좋은 취지나 의지를 살리는 일과「손댈수없다」「협상대상이 아니다」라는 경직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손질하여 좋은 취지를 더욱 발전적으로 살리자는 것이 국회의 심의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경직적인 자세가 이른바 새시대 새정치의 목표에 걸맞지 않음은 재언을 불요한다.
또 여당이 중시하던 대상을 세출에서 세입으로 갑자기 방향 전환을 한것도 설명이 부족한 대목이 아닌가 보여진다.
야당은「역부족」이란 핑계가 있긴 하지만 논리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은 오히려 여당측 보다 더 심했다는 인상이다.
이번 예산심의과정에서 민한당은 주견을 담은 뚜렷한 목표를 한가지도 세우지 못하지 않았나하는 느낌마저 주고있다. 세법개정을 통해 새해예산안의 흑자폭을 줄여 그만큼 국민부담을 줄여 보자는게 당초 민한당의 방침이었다.
그래서 민한당이 특히 주력했던것이 소득세법개정을 통한 국민부담 경감이란 명분이었는데 절충과정에서 정부·여당의 벽이 완강하자 쉽사리(?) 이 목표를 바꾸어 부가세 세수추계하향조정이란 변법에 매달렸다.
야당의 입장에선 소득세법개정주장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더 떳떳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삭감목표에 있어서도 당초 세입·세출 3천억원대·1천억원대 삭감주장에서 5백억원·3백억원으로 내려가 당내에서 조차『여당은 미동도 않는데 우리만 숫자놀음을 하고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야당자세가 더욱 곤혹스러워진 것은 협상이 마침내 결렬된 후 예산심의에 더이상 참여않느냐, 계속 참여하느냐의 문제였다.
결국「재무위까지는 불참」「예결소위부터는 참여」라는 절충론을 택했지만 야당의 기백 (?) 이나 기분으로서는 참기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야당의 이같은 절충적인 선택으로 협상 결렬후에도 긴장이 감돌지 않긴 했지만….
이런 여야의 예산심의자세를 되돌아보면 지난 3일3야의 협상자체가 진지성이 적었다고 할밖에 없다. 여당은 처음부터 기정코스를 달릴 생각이었고 그 점을 미리부터 눈치챈 야당은 체면치레 거리를 찾다가 그대로 체념해 물러서고 만 셈이다.
선거를 앞둔 정기 국회의 여야협상이 잘 타결되긴 어렵다. 따라서 이번에도 작년처럼 여야합의에 의한 예산안의 만장일치통과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중논이었다. 그런점에서「숫자로 표현되는 정책」이라는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선거를 의식하는 시점에서 과연 어떤 논리의 대결을 벌일지, 그 논리의 대결을 얼마나 모양있게 소화해 결론을 만들어 낼지가 주목거리였다.
그러나 이번 예산심의의 과정을 보면 여야는 제대로 볼만한 논리대결도 벌이지 못한 것 같고 결론도 모양있게 다듬어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수 없다.

<유 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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