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도 배려한 교황…바티칸에 노숙인 묘지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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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내 묘지에 처음으로 노숙인이 묻히게 됐다.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배려로 노숙인이 독일어권 출신의 내로라하는 왕자와 주교·학자들 사이에 묻히게 된다.

주인공은 지난 달 숨진 채 발견된 벨기에 플랑드르 출신의 빌리 헤르텔리어. 80세 안팎으로 추정되는 그는 수년 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인근에서 노숙하며 구걸했다. 그는 바티칸 미사에도 참석하곤 했다. 바티칸의 많은 이들이 그를 알고 지냈는데 아미리고 치아니 주교와 친했다.

그의 사후에 치아니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난 자리에서 “그를 어디에 묻을 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교황이 “품위 있게 묻힐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결정된 곳이 튜토닉 묘지다. 성 베드로 성당과 바오로 6세 알현실 사이에 있는 곳으로 바티칸 내에서 가장 오랜 독일인 정착지로, 독일어권 출신의 명망가들이 묻혀왔다. 지금도 이 곳에 묻게 해달라는 청원이 잇따르는 곳이다. 이곳에 노숙인이 묻힌 건 처음이다.

2013년 3월 취임 이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행보를 이어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노숙인들을 배려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이달 중순부터 성 베드로 광장에 노숙인용 샤워 시설을 세우고 이들에게 무료로 이발과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달 초엔 노숙인들에게 우산 300개를 나줘 주기도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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