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는 과잉징계 마라" 盧대통령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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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 학생들의 5.18 기념식 기습시위로 대통령이 후문을 통해 입장.퇴장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현장 경비.경호 책임자에 대한 문책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책임문제와 관련해 과잉징계가 있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5.18이란 뜻깊은 행사가 있는 날 공권력으로 무리하게 진압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며, 행위자(한총련 시위자) 처벌 쪽으로 가야지 경비책임자(경찰 등)를 처벌하는 쪽으로 가선 곤란한다"는 얘기였다. 행정자치부 장관의 엄정문책 방침을 보고받은 직후였다.

윤태영(尹太瀛)대변인은 이와 관련, "경비책임을 묻긴 하되 무겁게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뜻"이라며 "책임을 묻더라도 경호보다는 경비 쪽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도 "조사는 정확히 하되 엄벌할 사항은 아니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측은 사전 대비 수위 등 현장의 경찰 대응과 정보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김세옥(金世鈺)경호실장은 "경찰의 정보판단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피켓시위 정도를 예상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다른 치안 관계자는 "대통령 참석 행사인 만큼 현장 경비의 수위를 더욱 높였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조사를 거쳐 행자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협의해 문책 범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감찰반을 광주에 급파, 5.18 묘역 주변 경비를 맡았던 전남경찰청 경비과장 등 10여명을 상대로 현장대응에 소홀한 점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송두현 전남청 경비과장은 "당초 학생들이 피켓시위만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전남도청 앞 행사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판단해 유연한 경비를 펼쳤다"며 "이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기문(崔圻文)경찰청장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대통령 참석 행사를 잘못 경호하게 됐다"며 "이번 사태에 대한 지휘관의 책임 소재는 감찰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처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崔청장은 "앞으로도 불법 집회시위는 용납하지 않고 향후 한총련의 옥외시위 등도 냉정하게 검토해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내에선 당일 상황이 우발적이어서 대처가 어려웠던 만큼 광범위한 문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기류가 있다.

송인동 경찰청 정보국장과 유광희 경비국장 등은 "현장에서 이런 우발적 상황이 발생하면 시간상으로 검거 등 대응하기에는 촉박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훈.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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