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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감기·설사에까지 남용|최근의 투약실태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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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2면

항생제가 그사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끼친 공적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지만 그렇다고 「항생제 천국」이 명예스럽다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항생제도 다른 약제처럼 「약과 독의 양날」을 갖고있으며 어쩌면 더 심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해외에서 거주하다 온 사람들은 우리나라 병·의원의 약봉지, 약국에서의 처방 등에 항생제가 너무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자주 지적한다.
여기서 하나의 실례를 들어보자. 지난22일 사무실에서 왼쪽 둘째손가락을 크게 벤 서울서소문소재 모회사의 S씨(38)는 근처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간단한 치료를 받은 총 진료비는 6천8백6원. 그중 진찰료(보험) 가 1천l백70원, 처치료 1백62원, 주사대 9백42원에 약값이 4천5백32원으로 진료비의 3분의2. 문제는 약의 내용이었다. 3일분 9봉지마다 6개의 알약과 캡슐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 4개씩이 항생제였다.
처방은 염증예방이었겠지만 항생제의 과용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법원은 최근 4개월간의 항생제사용규제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독성이나 부작용·내성 등이 적어 안전하고 값싼 항생제를 1차 항생제로 정해 가능한 한 1차 항생제로 예방·치료를 해본 결과 독성이 강하고 불안정하며 가격이 비싼 2차 항생제를 썼을 때와 치료효과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
이 같은 규제결과는 항생제를 선택적으로 잘 쓰면 과·오용을 막을 수 있다는 하나의 산 증거로 전 의료계에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약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또 믿는다고 개탄하는 의료인이 많다. 이 같은 풍토는 그사이 아무나 돈만 내면 약을 사먹을 수 있는 무 규제제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생산실적을 보면 77년에 3백91억원어치, 79년에 7백92억원, 81년 1천l백86억원, 그리고 지난해는 l천5백78억원으로 늘어났다. 전체약품에서 항생제가 차지하는 비용도 8l년 17.1%에서 82년에는 17.8%로 늘었고 품목수도 8l년의 4백61개품목에서 82년에는 5백39개 품목으로 증가했다.
공급이 이처럼 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한 수요증가가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 조사는 지난해 10개 종합병원 외과입원환자의 83%가 항생제를 투여 받은 것으로 밝히고있다.
또 다른 보고서는 모 종합병원 입원환자의 경우 70.3%에 항생제가 투여됐는데 이중64%는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아도 좋았을 비 감염성·비 세균성 환자였으며 사용된 항생제의 적부까지 따진다면 80∼90%정도의 남·오용가능성이 있다고 이 통계는 지적하고있다.
원인균이나 감수성을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우선 항생제를 투여하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실패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기나 설사(이질은 제외) 환자에게까지 항생제가 투여되고 보면 결국 손해는 환자에게 돌아온다. 경제적 부담과 부작용의 위험, 그리고 균의 내성 증가 등이다.
가톨릭의대의 C교수는 일반적으로 항생제의 부작용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신장독성·간독성·신경장애·이독성·혈액장애·소화기장애 등의 독작용과 주로 페니실린제제에서 보는 과민반응(쇼크 등)이 주요 부작용이며 이 때문에 의료분쟁의 원인이 되고있다.
항생제의 선정은 임상적 판단과 약리학적·세균학적 지식이 가미되는 어려운 일의 하나로 항균력·감수성·내성균·체내동태·부작용·간편성을 비롯, 경제성도 고려해 진정한 투여의 필연성 판단과 약제선택을 해야하고 투여후의 치료반응여부 확인도 필요한 일의 하나라는 것이 의료인들의 견해다.
항생제가운데는 내성균 때문에 그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도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테트라사이클린제제. 60년대초부터 내성균이 증가해 일부 생소한 질환을 제외하고는 효과가 없는데도 20년 이상 그대로 쓰여져 지난 81년의 경우 매상고가 1백72억원으로 전체항생제의 16%나 차지하고 있다.
67개품목의 항생제를 1, 2차 약으로 나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안전하고 독성이 적으면서 저렴한 1차약 중심으로 사용을 유도한 것인데 그 결과 2차약의 사용량이 절반이상 줄어든 것이다.
이것은 값싼 1차약으로도 치료가 가능했다는 얘기가 된다. 1, 2차약가의 차이는 엄청나다. 하루약가(보험)의 예를 들면 l차약인 앰피실린(경구)이 3백원정도이나 2차약인 세파드록실은 5천원, 주사제는 1차약인 페니실린 G가 1천2백원정도이나 2차약인 세포탁심은 4만원선이나 된다.

<신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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