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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이명박 대통령 회고록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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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이명박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특히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국익을 해쳤다거나 지금처럼 혼란하고 민감한 시기에 내놓는 건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론 국가 지도자들의 통치에 대한 회고록은 역사적 데이터베이스를 풍부하게 하는 것으로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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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데이터베이스 넓어질 것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참여정부에서 국가기록관리위원장을 지낸 한 국사학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많은 대통령기록물이 비밀로 지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열람한 대리인이 비밀취급 인가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대리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가를 갖고 있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논리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대리인이 누구인지 찾아내 위법성을 밝혀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이런 당치 않은 주장이 의외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비밀취급 인가는 전직 대통령도 갖지 못하는 것이고, 그 대리인도 물론 그런 권한이 없다. 그러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8조는 전직 대통령에게 (본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자신의 기록에 대해 접근할 권한이 보장돼 있다. 언뜻 봐서는 모순된 내용 같지만 이 법률은 특별법이기에 다른 법규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전직 대통령이나 그 대리인의 비밀취급 인가 자격은 자신과 관련된 기록물 열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열람을 놓고 벌어진 이 같은 문제제기는 이제 중지돼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기록물에 대해 열람신청을 하지 않고 이용하려면 자신의 집에 통째로 가져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었다.

 둘째 논란은 비밀로 지정된 기록물을 통해 국가기밀을 누설했는가의 문제다. 전직 국가지도자들의 회고록은 대개 본인과 측근들의 집단기억에 의존해 작성된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그렇게 집필됐다. 그런데 날짜 등 엇갈리는 기억들이 생길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기록물을 통해 검증작업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런 재확인을 위해 두어 차례 기록을 열람했다. 보다 정확한 회고록 집필을 위해선 더 여러 번 열람을 했어야 할 일이다. 이 회고록은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기록물’에 의거해 작성된 책이 아니다.

 물론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라 할지라도 얘기해선 안 될 부분들이 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본인들의 몫이다. 그 점에선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도 논쟁에서 비켜갈 수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회고록은 국내외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거의 다 빼고 서술된, 아주 밋밋한 책이다. 그래서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고, 전체적으로 봐서 만족스러운 회고록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해외 지도자들이 그래온 것처럼 회고록은 연이어 출간되는 것이 관례다. 이 전 대통령 측도 앞으로 적절한 공개범위와 수위를 놓고 고심하면서 후속작을 내놓을 것이다. 후속 회고록의 내용도 많은 논쟁을 낳을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고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역사 데이터베이스는 더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에 공개된 내용 중에 관심을 모으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협상 뒷얘기들이다. 상당 부분은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왜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나”라는 비판이 많았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 측으로선 회고록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는 것이 당연하다. 일시적인 인기나 흥행을 위해 굴종적이고 무리한 뒷거래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다.

 사실관계가 전혀 틀린 논리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은 올바른 비평의 자세가 아니다. 또한 외국 정상들의 회고록들을 일단 읽어 보시라. 얼마나 민감하고 격한 얘기들이 서술됐는지 알고 나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오히려 싱겁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처럼 비생산적인 회고록 논쟁이 일어나는 나라는 없다. 이런 분위기는 회고록 쓰기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논란의 상당 부분은 정쟁(政爭) 수준에 불과하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돼야 생산적인 회고록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국익 먼저 생각했어야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800쪽 12개 장 분량으로 출간됐다. 책은 그 가운데 7개 장을 남북관계와 외교안보에 할애했다. 이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이 전 대통령 정부 시절 남북관계와 외교 분야에서 설로만 떠돌아온 사건들을 일부 확인한 점에선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한 사안들을 그대로 공개한 점이나 책을 낸 시점 등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

 우선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남북관계와 주변국 정상들과의 대화 등을 대부분 정제하지 않은 채 주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점이 아쉽다. 회고록은 북측이 이 전 대통령 정부 때 정상회담을 수십 차례나 제안하면서 사정사정했다고 서술했다. 이 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나눈 민감한 대화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회고록 전반이 이 전 대통령 정부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자기 방어적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는 정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는데도 “자신들의 입장대로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 정부의 남북대화와 주변국 외교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둘째, 전직 대통령이 알고 있는 고급 정보를 얼마까지 공개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낳고 있다. 회고록은 기밀사항까지 다 밝혀버려 향후 대북정책을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 회고록은 연평도 포격사태 직후인 2010년 12월 북측 국가안전보위부의 고위급 인사가 비밀리에 서울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들고 왔다며 이 전 대통령을 만나려다 실패하고 이틀 뒤 돌아갔고 얼마 후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회고록은 밝히고 있다. 이처럼 세세하게 남북대화 전반을 공개한 건 북측을 자극하고, 북측의 남북대화 당국자들인 ‘대남일꾼’들의 행동반경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대남일꾼들이 자신의 발언이 죄다 공개되는 마당에 무슨 앙화를 입으려고 남측 당국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 할 것인가? 한·중 정상 간의 비밀 발언도 여과 없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앞으로 우리 대통령과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회고록이 드러내선 안 될 사안들을 드러낸 결과 앞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어려움이 커질 게 분명하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익과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셋째, 회고록 발간 시점도 문제다. 현직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전직 대통령이 민감한 남북관계 비사나 한반도 외교 뒷얘기를 쏟아내는 게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회고록 내용 대부분은 남북 정상회담 비공개 추진설 등 재임 중 벌어진 논란에 대한 이 전 대통령 측의 변명과 합리화다. 회고록이기보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에 따라 쓰인 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을 1948년부터 6년에 걸쳐 썼다. 본인의 기억과 각종 문서를 접목한 이 회고록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차라리 회고록 집필을 않겠다는 김종필 전 총리가 더 나을지 모르겠다.

 넷째, 회고록이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지에서 집필됐다는 주장도 문제다. 전직 대통령 회고록에 거짓이 기록되거나, 사실이 침소봉대된다면 오히려 당대의 역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와 외교 등에 대한 회고는 특히 더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 중 몇몇은 국민과 유리된 정책을 펼쳐 지지율이 떨어지면 “역사에 내 평가를 맡긴다” “역사 앞에 책임지겠다”고 강변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통령들에 대한 국민과 역사의 평가는 대체로 높지 않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역사에 사료적 가치를 양심적으로 부여하는 ‘대통령 회고록’은 존재할 수 없는가?

김용현 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