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낮 방송 허용, 왜 지금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러한 지지는 BBC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기에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예를 들어 KBS가 지난해 638억원의 적자를 내고 급기야 정부로부터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동안 재정상태가 우리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된 BBC는 전체직원 2만8000명 중 10%가 넘는 2900명을 감원해 경영의 합리화를 꾀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공영방송이기에 무조건 직원 수를 줄이고 상업방송과의 시청률 경쟁 등을 통해 이윤을 남길 필요는 없지만,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를 낸 방송국과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준 정부의 정책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며칠 전 방송위원회는 그동안 금지해 왔던 낮 방송시간을 4시간 연장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시청권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언뜻 듣기에는 그동안 초법적인 형태로 국민의 TV 시청 권리를 가로막았던 정부가 이를 제자리로 갖다 놓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를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의구심을 갖게 하는 점들이 많다. 우선 낮 방송시간 연장이 과연 방송위원회의 발표대로 시청자의 선택권 확보로 이어질까의 문제다. 현재에도 주시청 시간대에는 오로지 시청률 지상주의로 인해 오락 위주의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고, 중복 편성이나 대응 편성의 관행은 수십 년간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방송시간이 늘어난다고 하여 이런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낮 방송을 하는 현재의 주말 프로그램을 보면 많은 시간을 재방송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인데, 다양한 프로그램을 늘려 외주제작사를 활성화하겠다는 설명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도리어 외국에서 수입한 프로그램만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점은 왜 하필 지상파 방송사들에만 이런 혜택을 주려 하는가라는 점이다. 현재 미디어 환경은 디지털기술과의 결합으로 인해 매체끼리의 치열한 경쟁에 휩싸여 있다. 신문산업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 급속한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사회경제적 예측 없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시행된 위성방송은 수천억원의 누적적자에서 헤어나기가 요원해 보인다. 그나마 케이블TV만이 최근에 흑자로 돌아섰는데, 만약 지상파 TV의 방송시간을 연장해 줄 경우 또다시 광고시장의 지각 변동으로 인해 케이블TV를 포함해 다른 매체들에 큰 타격을 줄 게 뻔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방송산업은 지상파TV가 중심이므로 재정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특정 매체 봐주기를 해서는 안 된다. 민주국가에서 미디어 정책의 기본은 미디어 간 균형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여론이 형성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KBS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고 MBC는 우주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위해 먼저 지상파 방송사들이 뼈를 깎는 자성과 경영혁신을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내년 5월 지방선거에 이어 200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제발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집권여당의 목줄을 잡고 있는 양대 선거에 앞서 미리 당근을 물려 놓으려는 일환으로 정부가 방송시간 연장을 통해 지상파 방송 길들이기를 한다는 의혹 어린 시선이 틀리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