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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스마트폰 딜레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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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호 22면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바야흐로 공식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로 진입한 셈이다. 졸업선물을 뭘 해주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중학교도 휴대전화 없이 지내보겠다고 선언했다.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신 기계 값의 일부와 전화요금만큼 용돈을 더 주기로 했다. 아들과 합의를 봤지만 많은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것 같은데 어떨까 싶기도 하다. 딜레마다. 내가 강연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도 “자녀에게 언제부터 스마트폰을 사줘야 하는지”였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친구들 소통의 기본인데 아들이 외톨이가 될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식탁에 앉아 한마디 대화 없이 스마트폰에만 코를 박고 있는 꼴이 싫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사실 부모 자신이 스마트폰 없이 자라났기에 아이들에게 언제부터 사줘야 할지 경험에 기반을 둔 기준이 없다는 점이 큰 이유다. 요즘 부모세대는 자기 부모들과 TV 시청 문제로 다퉜다. 돌이켜보면 이만기의 씨름 결승을 봐야 하는데 엄마가 TV 전원선을 아예 뽑아들고 나가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린 친구도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랐기에 지금 부모세대는 아이들의 TV 시청 문제는 잘 컨트롤한다.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은 그런 경험이 축적돼 있지 못하기에 불안하고 망설임은 당연하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스마트폰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고(高)학년이라고 해도 뇌의 발달과정을 고려하면 아직 자기 절제력과 충동의 억제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시기다. 이 시기에 아이가 원한다고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식탁 위에 식구가 다같이 먹을 만큼 불고기를 구워놓은 채 아이에게 먼저 밥을 먹으라고 한 뒤 엄마가 자리를 비웠다고 치자. 아이가 자기 몫만 먹고 참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눈앞의 좋은 것, 재미있는 것을 계속 하고 싶은 것은 아이다움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유혹의 물건을 쥐여주고 써야 할 때만 사용하길 바라는 것은 부모의 무리한 기대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상당한 아이들에게 자제력을 기대할 수 있다. 이때에도 무조건 사주거나 부모가 쓰던 것을 물려주기에 앞서 자녀와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고가의 기계를 다루게 되는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하고, 비싼 요금도 부모가 내주는 것이란 걸 인식하게 해야 한다.
요즘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공부에 집중하겠다며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을 쓰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학교에서도 학생의 휴대전화를 관리하는 것이 정착된 상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정보기술(IT)기기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150년 전엔 소설이 젊은이를 망친다고, 80년 전엔 영화가 풍기문란을 조장한다고, 30년 전엔 TV가 위험하다고 기성세대는 개탄했다. 또 이를 당시 미디어는 뒷받침했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딜레마도 새로운 문물을 빠른 시간에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적응의 혼돈 탓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걸러낼 것은 걸러내고, 암묵적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응해 냈다. 스마트폰도 위험한 물건인지 아닌지의 판단보다 적응의 관점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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