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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옛길 1만리 함께 걸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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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출발합시다. 동지!"

"송 선비, 이번 과거길이 몇 번째인가?"

"난 처음일세. 김 선비는?"

"과거는 무슨…. 난 국밥이나 팔아볼까 올라가는 길일세."

조선조 과거 보러 상경하던 선비들이 재 넘으며 가쁜 숨 달랠 겸 뱉어내는 객담이 아니다. 함께 길 걷는 부부간의 대화다. 고생도 해야 정을 안다고 했던가. 고된 발품은 열한 살 차이 나는 김재홍(47).송연(36)씨 부부를 깊은 농 주고받는 평생 동지로 만들었다.

2001년 봄 부부는 11년째 운영하던 카페를 접었다. 결혼 후 줄곧 해온 생업이었다. 군자금 1억5000만원이 만들어졌다. 2년 정도는 일 안 하고 걸어다닐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정말 10년 넘게 하루도 안 쉬었어요.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선 인도 배낭여행을 해보자는 데 맘이 맞았다. 한 달 동안 걸어서 말이다. 가진 돈을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는 비법이었다. 먼저 체력훈련 겸 남편 재홍씨가 길을 나섰다. 동해건 서해건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열흘이건 보름이건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무작정 걸었다. 초보 보행이라 쉽지만은 않았다. 텐트와 침낭, 버너만 넣어도 배낭 무게가 15㎏을 훌쩍 넘어갔다. 걸은 지 하루 만에 밤톨 만한 물집이 잡혔고 배낭 멘 어깨 피부가 벗겨져 나갔다. 어찌나 힘든지 사흘 걸으니 발 냄새도 안 났다.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쌀 무게를 줄이려고 식당에서 공깃밥을 사 먹고 속옷은 싸구려를 사서 사나흘씩 입은 뒤 버렸다. 걷다가 볼일이 생기면 차를 타고 돌아왔다가 일을 마치고 다시 그 지점으로 가 걷기를 계속했다.

"그래도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죠. 말이 하고 싶어서 사람만 만나면 아는 길을 묻고 또 묻고 했어요."

그간 운기조식하던 아내 연씨의 동행은 그래서 필연이었고 새 동력이었다. 그런데 맘이 바뀌었다. 인도는 무슨…, 우리 길도 모르면서. 인도 땅은 나중이고 우선 우리 땅을 먼저 밟아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남편을 믿는 아내도 별 불평 없이 따라와 주었다. 그 무렵 빚보증을 잘못 섰다 군자금의 절반 정도를 날려버린 변고도 인도 여행을 미루는 계기가 됐다.

내공이 쌓이니 안광이 달라졌다. 그저 맨땅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스며 있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차로 다니는 길과 걸어가는 길은 분명 달랐다.

<의정부>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자동차는 고불고불 넘어야 하는 고개지만 걸어서는 지름길로 넘을 수 있는 거잖아요. 곧게 뻗은 신작로 주변에는 이 마을 저 고을 거쳐가는 옛길이 있게 마련이고요."

기왕 걷는 건데 아스팔트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자연 '옛길'이라는 화두가 생겨났다. 그러나 걷는다고 사라진 옛길이 벌떡 일어나 주겠나. 부부는 걷다 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비교적 최근에 나와 있는 옛길 지도라고는 향토사학자 김종오씨가 만든 '걸어서 가는 한양천리'와 영남일보에서 만든 '영남대로 일천리'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 위에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해동지도, 1872년 만든 옛 군현지도, 일본 육군본부가 발행한 조선 침략용 지도, 조선 총독부 지도 그리고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를 포갰다. 옛 지명과 오늘 이름을 대조하며 찬찬히 살펴보니 그제야 조상의 발자취가 어렴풋이 배어나왔다.

"공장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이 아니면 옛길은 꼭 찾을 수 있어요."

물론 수십 년간 인적이 없었던 지라 온갖 잡목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경 고모산 토끼벼루라는 곳에서는 500m 전진하는 데 한 시간도 더 걸렸다. 언제부터 쌓인 낙엽인지 무릎까지 빠질 때도 있었다. 장성에서는 길을 못 찾아 세 번이나 다시 간 일도 있었다.

"해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삼남대로는 470㎞지만 실제론 600㎞도 넘게 걸었을 거예요. 원래 사람이 3㎞ 산책하면 강아지는 6㎞ 걷는다잖아요."

때론 고속도로 갓길을 걸어야 하는 구간도 생긴다. 그땐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도 겁나지만 경찰 순찰차가 제일 무섭다. 걸렸다가는 순찰차에 태워 엉뚱한 곳에 내려놓기 때문에 수십㎞를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길에서는 부인을 앞장세운단다.

"여보야, 앞서 나가라."

"에구, 뒤에서 차가 덮치면 보호해 주려고? 고마워."

"무슨, 앞에 가다 엎어지면 코 깨지잖아. 차라리 당신 엉덩이에 박는 게 낫지."

부부가 같이 걷기로 맘먹었지만 처음엔 걱정도 됐다. 여자의 몸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숙박도 야영에서 민박이나 여관으로 바꿨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니 서로 의지하는 동지가 되더란다.

"워낙 힘이 드니 부부라고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워요. 보폭이 달라 손잡고 걷기도 어렵고.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집에서는 생길 수 없는 신뢰와 동지애가 생기더라고요."

"어차피 부부가 힘든 길 같이 가는 동반자잖아요. 서로 힘이 들면 함께 일주일만 걸어보라고 권하지요."

그렇게 걸은 길이 하루 평균 30㎞, 모두 4000㎞에 달한다. 그들이 걸은 민통선길과 해안길, 영남대로(동래~서울), 삼남대로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꼭 수(囚)자 모양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좋은 길동무도 만나지만 때로 '맛이 간' 사람 취급도 받는다.

"근데 아자씨, 회사는 어카고 걸으요?"

"그만뒀죠."

"아니, 글면 옛길만 찾고 돈길은 언제 찾을낀데?"

그것도 그렇다. 모아둔 돈 길에서 다 까먹은 이 부부, 현재 의정부에서 '옛길따라'라는 주막집을 열어 다시 실탄을 비축하고 있다. 옛 경흥대로의 길목이라는 점 하나로 건물 3층이라는 악조건도 무릅썼다는 걸 보면 두 사람,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이들 부부는 최근 그들의 발자취 기록을 '옛길을 가다'(한얼미디어)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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