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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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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KAL기격추사건을 기점으로하여 약2개월동안에 발생하였던 국제적 대사건들-버마암살폭발사건, 베이루트폭발사건, 그레나다침공등은 국제정치 기류와 구조에 심각한 변동을 예고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보다 시기를 길게잡아 79년에 감행되었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침공으로부터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침공이 오기까지의 국제정치와 미국외교정책의 동태를 관찰하면 세계가 보다 위험하고 험난한 국면으로 다가서고 있음을 감지할수있다.
비록 그 성격이 다르다고는하나 이 두 침공사태는 소련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이란점에서 매우 심각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서 공산진영의 팽창정책과 혁명수출정책에 미국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한 제동을 걸고 그 경계를 설정한 것이다. 아웅산암살폭발 사건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이러한 유의 계획된 테러행위가 재발될 경우 단호한 응징조처를 불사하겠다는 대북경고를 한바있다.
이와같이 미국의 대소도발억제정책과 한국의 테러및 전쟁억지정책이라는 경직된 정책이 천명되기까지에는 이를 강요한 공산진영의 책동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겠으나 이러한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측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전쟁억제력의 효과란 항상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건」대통령의 방한은 한국이 처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한국민의 대다수가「레이건」대통령의 방한이 미국의 대한방위의지를 재천명하고 나아가 한국의 전쟁억제능력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하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기대는 방한의 효과만으로는 충족되기 힘든 것으로서 이는 미국의 지속적이고도 적절한 관심과 강력한 대한방위의지에 의해서만 충족될수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정계나 학계 일각에서는 한·미·일 3국간의 방위분담문제와 삼각협력체제론이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 첫째는 한국의 방위비 문제와 직결되는것이고,둘째 문제는 일본을 포함한삼각안보체제의 구축문제다.
한국은 과거30년동안 준전시체제속에서 국방을 국가목표의최우선순위로 취급하여 왔다. 한국민들은 이러한 명분아래 강요된 유신체제에서 긴급하고 급박한 사고의 틀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이다. 또 이러한 정책속에서 한국의 국방비는 GNP의 6%, 국가예산의 37%라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여왔다. 이같은 막중한 방위비는 한국민이 마시는 코피한잔에도 방위세가 부가됨으로써 충당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민들은 과다한국방비 지출과 급박한 사고속의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므로 말미암아 그 한계를 느낄지도 모른다. 더욱 막중한 국방비의 증액은 분명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의 논리는 미국의 대한방위가 쌍무적인 경우 그 지속성이나 의지의 강도가 불명확하다고하는데 있는 것으로서 한·미·일로 연결되는 방위체제만이 미국의 지속적 방위보장을 확보할수있다는 발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논리에는 한국의 전략적가치가 그리 크지 못하다는 가설이 숨어 있다. 즉 일본의 방위와 연결되어야만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진다는 논리인 것이다. 한국민들로서는 이같은 사고에 동조할수없다.
한국가의 방위망이 다른 인접국가와 연결되었을때 보다큰 의미를 지닌다는 논리는 극히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타당한 논리겠으나, 한반도가 객관적으로 분명한 전략적 요충지대임과 그 전략적가치는 미국이 지난 3O년간 이를 방위했던 사실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것이다.
공통의 이익에 관련된 영역에서 한·미·일의 안보협력은 극히 낮은 차원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미·일안보체제의 구축은 대다수 한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것이며 일본이 동북아에 있어서 미국의 대역을 하기를 원하는 인접극도 없을것이다. 한국민은 일본은 일본을 방위하고 동북아의 안정세력으로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하고있다.
한미관계는 주로 안보와 경제의 측면에서 강조되어왔다. 한국민들은「혈맹」이란말에 익숙해있다. 이와같이 안보로 연결지어지는 한미관계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이 막중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러한관계는 반드시 문화적 측면에 의해 보완되어야만 한다. 더욱이 한국과 미국은 상이하고 이질적인 문화권안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보다 견고한 양국관계를 유지하는데는 폭넓고 활발한 문화교류에 의해 양국간의문학적 이질성을 극복하고 인지적 조화를 이루는것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다.
1979년 박정희대통령과「카터」대통령이 체결한 한미문화교류협정은 이러한 취지를 반영하고 있는것이나 아직 효과적인 시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아쉬운 일이아닐수 없다. 양극정부는 이를 보완하고 실전에 옮겨야 할 과제를 안고 있음을 인식하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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