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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시간에 쫓기는 안드로포프|중병설속에 집권1년-크렘린의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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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련의 10월혁명 66주년을 기념하는 붉은 광장의 군사퍼레이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지난 66년간 계속돼온 이 전통적인 행사에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소련공산당 최고지도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미 3개윌전부터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유리·안드로포프」서기장은 5일의 10월 혁명기념식과 7일의 퍼레이드에 「감기」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으로 미국기자들에게설명됐다.
지난해 사망한 「브레즈네프」도 숨을 거두기 바로 사흘전 붉은광장에서 2시간 가까이 버티며 행진대열에 인사를 보내야 했을 만큼 행사참석은 소련공산당 지도자에게는 하나의 의무다.

<퍼레이드 불참 이변>
이번 행사에 불참할 정도의 병이라면「안드로포프」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현재 알려지기로는 신장병을 앓고 있다고 하고「최고지도자의 중병은 소련에서는 으례 곧바로 .후계자승계를 위한 권력투쟁소문과 연결된다. 제도적으로 당서기장의 선출방법이 명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암투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안드로포프」 역시 1년전 군부와 KGB의 지원아래 강력한 경쟁자로 알려졌던「콘스탄틴·체르빈코」를 제지고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안드로포프」가 강력한 권력기반을 갖고 서기장이 된 것은 아니다. 지난1년간 그의 권력기반이 더욱 강화됐다는 조짐도 아직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흐루시초프」나「브레즈네프」가 집단지도체제의 틀을 벗어나 자신의 주위로 권력을 집중시키는데 오랜시일이 걸렸던 점을 미뤄본다면 당연한 일이다. 「흐루시초프」는 53년부터 57년까지 4년, 「브레즈네프」는 거의 10년을 소비해 권력을 집중화했다.
이에 비한다면 「안드로포프」는 이 두 인물보다는 조건이 좋지 않은 평이다.
나이도 69세의 고령인데다 건강마저 좋지 않아 시간에 쫓기는 형편이다. 시간이 있다 해도 3∼4년정도로 촉박하다.
소련의 정치국은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의 대표들이 모인 연합체같은 성격을 갖고 있는 기구다.
「안드로포프」는 이런 이익집단의 틈바구니에 끼어 파벌간의 이해를 조절하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포섭하는데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난l년간 「안드로포프」는 자신의 권력확장보다는 기반을 다지는데 노력해왔다.

<정치국원 보충못해>
정지국을 비롯, 행정부에 인사개편이 있기는 했으나 「안드로포프」 개인의 권력을 강화시키기에는 미흡한 것이 있다.
「브레즈네프」말기에 14명에 이르렀던 정치국원이 현재 11명밖에 되지 않으나 이를 늘리지 못하는 것은 「브레즈네프」가 증원을 자기세력확장에 이용했던 것을 알고 있는 지도부내에서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제약들때문에 지난1년간 「안드로포프」의 정책도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본질적인 소련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우선 손쉽고 눈에 잘 띄는 업적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이라든가, 유러미사일 (중거리핵무기) 문제에서 「안드로포프」의 정책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련지도자들중에는 「안드로포프」가 합리적이고 세련된 인물인 것처럼 돼 있으나 그의 서기장취임이후 중국에 대한 개입 노력이 다시 시작돼 시리아에 SAM-5미사일을 보내고 있는 것 등은 그가 소련의 전통적인 정책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KAL기격추사건 역시 「안드로포프」체제의 이런 한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었다. 권력승계과정에서 군부의 신세를 지기는 했으나 KAL기 사건은 군부를 통제할 만한 기반을 그가 갖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안드로포프」의 정책중 가장 관심을 끌였던 것은 법과 질서캠페인이었다. 노동자의 나태함과 사회각층의 부패를 추방하는 운동이었다.

<새로운정책 못펴>
이에 따라 부족한 생필품을 마련하기 위해 근무시간중 상점에 줄지어섰던 노동자들이 붙잡혀 직장으로 되돌아가고 근무시간도 지키게 됐지만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올라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습성화됐던 생활의 오랜 리듬이 깨짐으로써 인기 없는 정책이 돼버렸다.
부패추방운동 역시 국민생활에 너무 깊숙이 관여해 일부에서는 반발까지 사고있다. 모스크바의 1급호텔앞에서 택시운전사가 외국인 방문자에게 외화암거래에 응하지 않는다고 승차 거부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경제정책 부문에서 군수산업 부문을 축소하려고 노력한다는 보도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으나 소련의 정치·경제구조로 보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군부의 반발도 고려해야 되지만 경제구조 자체가 군수산업에 큰 비중이 주어지고 경제성장률을 이 부문이 주도하고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당장 획기적인 산업구조 개편은 불가능한 형평이다. 이처럼「안드로포프」등장 1년만의 정책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그의 중병은 다시 후계자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다.
현재의 정치국은 외형적 구성으로는 「체르넨코」 (당서기겸직)와 「티호노프」(수상)· 「우스티노프」(국방상)·「그로미코」 (외상)등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젊은세대등장 예상>
모두 70세가 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브레즈네프」와 「안드로포프」에서 보았듯 크렘린 지도자들은 연로하고 병약한 지도자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들을 경험적으로 알게됐다.
그런점에서 앞으로는 보다 젊은 세대가 등장하리라고 보는것이 타당할것이다.
이런 점에 합당한 인물로는 현 정치국원중「고르바초프」 (52·농업담당서기겸직)와「로마노프」(60·공엄담당서기겸직)및「알리예프」 (60·제1부수상)등을 꼽을수있다.
이 세사람중 지금까지 당서기장에는 정치국원과 당서기직을 함께 갖고 있는 인물이 선정됐던 예로 봐서「고르바초프」와「로마노프」가 주목된다. 이를 더욱 압축한다면 「로마노프」의 경우 그가 레닌그라드출신이기 때문에 모스크바와의 전통적인 대립관계가 불리하게 작용할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로서는 「고르바초프」가「안드로포프」의 후계자로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것으로 볼수있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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