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제부문 기자
영어신문 기자 시절, 외국인 에디터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주문했던 기사가 있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탈북자 이야기가 첫째요, 놀랍기 그지없다는 한국의 성형 문화가 둘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朝鮮, Morning Calm)’라는 이름은 모 항공사 기내지 이름일 뿐 이제 이 나라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미국 유력지에서 중동 특파원을 지낸 뒤 한국에 왔던 어느 에디터는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1면거리가 넘쳐서 고민인 건 이스라엘 이후 처음이군.”
그 에디터가 신기해했던 한국의 특징은 또 하나, 자국이 타국에 어떻게 비추어지는지에 퍽 민감하다는 거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한국을 “산낙지 먹는 성형대국”이라고 묘사했다는 보도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그가 떠올랐다. ‘한국을 비하하고 조롱했다’며 국민의 공분을 끌어낸 해당 기사는 “IOC, 게시물 삭제”라는 의기양양 후속 보도로 이어지며 관심을 받았다.
IOC에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관련 내용은 국제미용성형외과협회(ISAPS) 등을 인용한 것”이라는 요지의 답이 왔다. 외교적인 답변의 행간엔 “없는 사실도 아닌데 우리한테 왜 이래”라는 억울함이 묻어났다.
성형도 성형이지만 산낙지 입장에선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을 노릇이다. 먹히는 것도 서러운데 먹는 걸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니 어찌 억울하지 않으랴. 산낙지가 부끄럽다면 전국 각지에서 성업 중인 산낙지 전문점은 뭔가. 22일 현재 서울시 마포구 인근에만 628곳의 산낙지 식당이 검색된다. 산낙지가 바퀴벌레도 아니고(바퀴벌레에겐 미안) 고단백·저칼로리 식품 아닌가.
지금이야 서양인들이 젓가락으로 스시를 먹는 게 ‘쿨’로 통하지만 스시 역시 처음엔 “생선을 날로 먹는다니 야만스럽다”고 천대받았다. 가디언은 2006년 ‘스시는 어떻게 세계를 평정했나’라는 기획기사에서 유명 레스토랑 ‘노부’의 셰프 마쓰히사 노부유키(松久信幸)의 일화를 전했다. 스시를 내놓았다가 세 번이나 거절당했지만 서양 야채를 곁들여 살짝 변형하자 손님이 맛있게 즐겼다는 거다. 마쓰히사 같은 이들이 스시를 부끄러워했다면 오늘날의 스시 문화는 없다.
외국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우리가 우리 문화를 부끄러워한다면 글로벌한 세상에 살기 힘들다. 대신 이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어떤가. “송송 썬 대한민국 땅끝 갯벌산 산낙지 위에 한 알 한 알 껍질 벗겨 짜낸 참기름을 살짝 뿌린” 히트 전채 메뉴 ‘더 샌낵지(the Sannakji)’가 세계 미식가들을 줄 세우는 곳. 지금으로선 산낙지는 이래저래 억울하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