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는 일종의 디지틀광통신 | 경희대 진용옥교수 발표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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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신및 근대우편제도가 도입되기전 우리나라의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던 봉화제도는 변조방식이나 중계방법등이 현대의 통신과 매우 유사했다. 봉화제도 통신공학적 특징을 한국통신학회 83년 추계학술발표회에서 소개된 진용옥교수(경희대전자공학과)의 「한국봉화제도의 현대통신공학적 분석」을 통해 알아본다.
봉화제도란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변방의 비상사태를 중앙에 알린 통신체계다. 우리나라의 봉수제도는 이미 기원전9년 백제 온조왕때 사용된 기록이 남아있다. 그후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공수제도가 정비되어 체계를 갖추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전국적인망을 갖추고 군사통신의 역할을 했었다.
봉수대는 그 위치에 따라 서울 남산에 위치한 경봉대와 해안선 국경지대에 위치한 연봉대, 그리고 이들을 잇는 내지봉대의 3종류가 있어 운용인원과 봉수대간의 거리를 각각 달리했다.
봉수망은 경흥·동래·강계·의주·순천등 5개지점과 서울의 종점을 잇는 5개노선이 있었는데 전국적으로 모두 6백73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봉수대간의 거리는 변방지역이 4∼6km, 그밖의 지역이 지리적 여건등에 따라 8∼20km였다.
봉수방법은 5단위 코딩제.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5개의 화두에서 내뿜는 연기나 횃불의 수를 달리했다. 즉 현대통신공학적으로 보면 각화두에 연기를 넣느냐(l) 않느냐(0)의 조합으로 전달정보의 의미를 구분한 디지틀 변조방식이었던 것이다.
전달정보의 양은 5개 화두의 디지틀조합으로 전달할수있는 32비트중 5비트만 사용했다. 평시에는 일거(10000, 5개화두중 1번에만 연기 혹은 횃불을 넣은것), 적출현시는 이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삼거, 국경을 침범하면 사거, 그리고 접전상태일때는 오거로 각각 메시지를 구분해서 전달했다.
기점으로부터 서울의 경봉대에까지 메시지가 전달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 거리에따라 6∼8시간 정도였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진교수는 봉수제도가 디지틀화된 광통신의 일종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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