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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관계 로드맵 24개 항목 내달 입법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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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입법화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정부가 자체 안을 확정해 다음달 초 입법예고키로 한 것이다. 입법안을 내놓으면 노사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쟁점 사안들이라 노사가 모두 논의 자체를 회피한다는 것이 당정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24개 항목을 일괄 처리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첨예한 대립으로 합의가 어려운 내용일수록 한꺼번에 다뤄야 그 안에서 노사 간에 '주고 받기'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 어떤 내용 담기나=2007년 허용되는 복수 노조 문제, 복수 노조의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문제,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등이 이번 입법안의 쟁점이다. 또 대체근로 허용과 직권중재제도 폐지, 긴급조정권 활성화 방안도 입법 대상에 들어갔다. 하나같이 노사가 한치 양보없이 대치하고 있는 사안들이다.

복수 노조의 교섭창구로 정부는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을 주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노조원 수에 비례해 뽑힌 대표로 구성한 공동교섭단 방식도 염두에 두고 있다. 소수의 목소리도 반영하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업장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정하게 맡겨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단일화 방안에 찬성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부담하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다만 노조의 힘이 약한 중소기업 노조는 노조간부의 권리보장 장치를 마련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대체근로는 노동계가 가장 반발하는 사안이다.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정은 일단 공익사업을 중심으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공익사업 범위에 열.증기 공급업과 사회보험 등 공공서비스업을 추가할 계획이다.

당정은 대신 필수공익사업장과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자는 노동계 주장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대신 공익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긴급조정 기간을 현행 30일에서 60일로 늘리는 등 긴급조정권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관련 사업장에서 노사분규가 심해져 사회적 혼란이 빚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공익사업장의 경우 파업 때도 최소한의 업무를 유지토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된다.

현재 합법 파업에만 직장폐쇄를 할 수 있는 조항도 노사 대등 원칙에 따라 불법 파업에 대해서도 직장폐쇄를 할 수 있도록 확대된다. 그러나 방어적으로만 사용해야지, 분규 전 직장을 폐쇄하는 등의 공격적인 사용은 엄격히 금할 방침이다.

실업자의 초기업 단위 노조 가입 허용 등 나머지 입법 예정 항목은 노사 모두 크게 쟁점화하지 않고 있어 입법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실업자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조 가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1998년 노사정위에서 기업 밖의 노조에는 실업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가 입법이 보류된 적이 있는 데다 지난해 2월에는 대법원이 실업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 노사간에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 제외되는 항목은=임금체계 개편과 맞물린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의 산정 기준 .개념은 당장 입법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기본급보다 수당이 많은 현실과, 연봉제와 호봉제 등이 혼재된 임금체계를 감안할 때 좀 더 깊이있는 실태조사와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노조가 파업 등 쟁의행위에 돌입하기 전 반드시 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치도록 한 조정전치주의 폐지 문제도 입법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노동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분규현장을 찾아가 노사 간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인력과 제도를 갖춰야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당정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사분규를 노사가 신뢰하는 제3자의 중재에 따르도록 하는 사적조정제도의 활성화 문제도 현재의 대립적 노사관계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판단에 따라 장기검토 과제로 돌렸다.

김기찬 기자

입법 왜 서두르나
ILO·OECD 등 국제기구 압력 커져
복수노조제 앞두고 법 정비도 절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의 입법을 서두르는 것은 로드맵을 이대로 둘 경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내 노사관계도 대립구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 국제노동기구(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노동법 개정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당장 2007년으로 다가온 복수노조제 시행을 앞두고 관련 법 정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올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국제경쟁력을 평가대상 60개국 중 꼴찌로 매겼고, 세계경제포럼(WEF)도 104개국 중 77위로 평가했다. 이처럼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원인은 ▶노동계의 계속되는 비리▶경영계의 부당노동행위와 정부 의존적인 태도▶대기업.고임금 업종 중심의 파업 등이라고 정부는 분석한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3년 5월 노사관계 관련 학자 15명으로 구성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9월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후 노사정위원회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노동계의 불참으로 2년여를 허송세월했다. 결국 올해 9월 3일 노사정위의 논의시한이 만료됐고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노사는 2007년 시행예정인 복수노조 허용과 이에 따른 교섭창구 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조차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ILO는 1993년부터 복수노조 허용뿐 아니라 ▶필수공익사업 축소▶실업자 조합활동 허용▶제3자 지원 신고제도 폐지 등을 13차례에 걸쳐 권고했다. 현재 한국을 노동 관련 감시국가로 지정한 OECD 이사회도 올해 6월 23일 한국이 2007년 봄 또는 그 전에 노동 관계법 개정 사실을 보고토록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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