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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도입 사령탑 무력…육해공 아군끼리 내전 상황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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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K 전투기와 탑재미사일. 엔진을 포함한 핵심 부품을 옮겨다 쓰는 ‘돌려막기’가 심각하다.

해외 무기 도입 과정에서의 각종 부정, 방산 비리, 국산 무기의 불량, 전력화 지연, 부품 돌려 막기, 과잉·중복 무기 구매, 예산 타령…. 우리 군의 전력 증강과 관련한 각종 스캔들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전 해군참모총장과 공군참모차장까지 비리로 구속됐다. 육해공군 각 군이 최신 첨단 무기 구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떤 무기가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소요(所要) 책정부터 구매·개발 전 단계에 걸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연속이다. 무엇이 우리 군을 이런 지경으로 만들었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방안보 문제 전문가인 김종대 디펜스21+ 발행인 및 편집장, 김용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가 만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책을 내놨다.
 
-군 전력 증강 과정이 총체적 부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근본적 원인은.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우리 군이 개념에 기반을 둔 군사력 건설에 미흡했기에 향후 북한 따라잡기식에서 탈피하겠다”고 선언했다. 군의 잘못된 소요 제기가 전력 증강 실패 및 부패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 이를 쇄신하겠다는 이야기인데 매우 어려운 과제다. 역대 정부 국방 개혁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로 나타난 총체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종대 디펜스21+ 발행인=“부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잘못된 소요”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군의 소요 제기 체제는 참 이상하다. 북한 무인기 발견, 천안함·연평도 사태, 북한의 대북 전단 풍선 사격사건 등이 일어날 때마다 동네축구처럼 우왕좌왕한다. 여기에 정치 논리가 더해져 자고 일어나면 전력 증강 정책이 바뀐다. 육해공군에서 중복된 소요가 결정되고 벌여 놓은 사업을 뒤치다꺼리하는 데 급급하면서 무기 개발 시스템이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김용삼 전 월간조선 편집장=많은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북한 하나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무기체계를 개발해야 했는데,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첨단 무기도 아닌 최첨단 무기를 선호한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데도 마구잡이로 해 놓고 뒷감당도 못한다. 한국형 국방철학을 만들어 내야 한다.
 
-결국 소요의 왜곡이 부패와 전력화 실패의 근원이라는 말인데 사례를 든다면.

▶김용삼=미국은 대통령의 국방예산 지침이 군 통제의 핵심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국방비를 10년간 약 1조 달러(약 1000조원 규모) 삭감했다. 이에 따라 약 4000대의 F-35 소요를 2000대로 줄이고, F-18 등을 성능 개량해 보완했다. 이로 인해 최초 대당 1000억원 정도로 예상했던 F-35를 최근 2000억원 내외로 한국과 일본이 구매했다. 국방예산 지침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김종대=2007년 F-16이 연속 추락해 김성일 공군총장이 사임했다. 당시 공군의 만성적인 정비예산 부족이 8000억원 규모였다. 따라서 F-15K 120대의 소요를 5세대 전투기 60대로 대체하고, 한국형차세대전투기(KFX) 사업을 F-16 마이너스급으로 구조조정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방비 증가율은 각각 8.8%, 5.2%, 4.2%다. 예산은 반 토막 났는데 F-35는 두배의 예산으로 구매했고, 20대의 추가 소요가 있으며, KFX는 2조~3조원의 사업에서 8조원 규모의 F-16 플러스급 사업으로 변했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국방예산 지침이 군에 적용되지 않는다.

▶홍성민=우리 육해공군의 전차·항공기·함정 위주의 전력 증강으로 왜곡된 소요는 ‘만성적인 정비예산과 무장예산 부족→가짜 핵심 부품 도입 및 사기 정비→전력화 실패 및 국지도발 대응 실패’의 악순환으로 귀결된 것이다. 최근 K-11 복합소총 등 국내 개발 무기의 전력화 실패 및 부실화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1000억원에 도입한 F-15K의 경우 1182회의 핵심 부품(엔진 포함) 돌려 막기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도입이 결정된 F-35는 장착 무기가 부족해 반쪽 전력 신세이며, 그 밖에 최신예 잠수함이 걸핏하면 고장 나고 잠항 능력에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방향 설정이 중요한데.

▶김종대=한국형 무기체계와 전력체계는 ‘어떻게 싸우느냐(how to fight)’를 먼저 결정한 뒤 세워야 한다. 그에 맞는 합리적 소요 책정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전략건설 비전이 중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임기응변, 때우기식 전력 증강을 면할 수 없다. 지금 우리 군대는 ‘내전 상황’이다. 유니폼이 서로 다른 아군을 상대하는 전쟁이다. 육군과 공군이 각자 사업을 하다 보니까 작전 영역이 중첩되는 심각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그래서 문민 통제의 핵심인 정치권력의 책무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김용삼=북한보다 우리의 국력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뚫리고 있다. 그 많은 예산을 가지고도 북한에 늘 당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재래식 전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두 가지가 중요하다. 획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데 실천은 빵점인 게 문제의 핵심이다. 군은 관료화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홍성민=현재 전력 증강 소요에 대한 대수술이 절대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요 제기 무기의 등급을 ‘벤츠에서 쏘나타’로 낮추고, 현재 육해공군 플랫폼(전차·함정·항공기)의 소요를 50% 이상 삭감해야 한다. 또한 해외 직도입 사업을 최소화하고 국내 개발을 최우선화해야 한다. 감시정찰과 정밀타격 무기의 소요도 획기적으로 증대해야 한다.
 
-방사청의 부정부패와 무기 도입 비리가 심각한데.

▶홍성민=전 세계에서 일반 공무원에게 무기사업 관리를 맡기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방위사업청 출범 시 외청을 만들다 보니 공무원이 무기 관리업무에 투입된 것이다. 방위사업청 창설 시 모방한 프랑스 병기본부는 국방부 직속이며, 1만8000여 명의 인원이 병기장교와 민간 전문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향후 공무원을 70%로 증원한다는 것은 오히려 부패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국방부,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육해공군 본부 전체에 대한 인력 재배치가 시급하다.

▶김용삼=예를 들면 차세대전투기(FX) 3차 사업과 F-16 성능 개량사업 등 주요 사업을 공무원 출신 방위사업청장과 차장이 주관해 왔다. 철저히 실패했다. 그런데 F-35 사업을 수주한 록히드마틴은 한국형 전투기사업을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인도네시아와 공동 개발할 경우 기술 이전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만일 에어버스가 이 사업을 수주하면 록히드가 기술 이전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봉숭아 학당’식 사업 추진의 문제점을 방위사업청장, 국방부 장관 그리고 대통령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현재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 대한항공·에어버스 컨소시엄이 이파전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엔 미국의 군사동맹국이 아닌 인도네시아가 20%의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어 미국 록히드 측의 기술 이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상태다).

▶김종대=지금 나오는 비리를 방산 비리라 싸잡아 말하는데, 옳지 않다. 가장 많은 건 군사기밀을 몰래 빼내 외국 업체에 가져가 그 회사의 무기가 소요에 반영되도록 하는 브로커십이다. 또 하나는 외국 짝퉁 부품을 오퍼상을 통해 정품으로 둔갑시켜 수십 배 폭리를 취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천안함의 소나 같은 핵심 부품이 그런 예다. 예비역이 가담해 하나의 커넥션을 형성하는 비리가 대부분이다. 반면 국내 방산은 원가 조정 문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업체가 승소한 게 많다.
 
-정부에는 책임이 없나.

▶홍성민=이명박 정부 때 잘못한 게 최저가 경쟁입찰이다. 국내 방산만 그런 것이다. F-35를 들여올 때 돈이 모자라면 대수, 무장, 정비예산을 줄인다. 방산을 최저가 경쟁입찰하는 나라는 없다. 그래서 업체가 살기 위해 군 출신을 스카우트해야 한다든지, 뭔가 비밀을 캐내서 한다든지 하는 폐해가 생긴다. 제도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주요 전략물자는 독점 수의계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종대=비리 책임의 절반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방산물자 납품를 받는 과정에서 갑질,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업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규제가 많다 보니 중소업체는 못 견딘다. 품질검사 비용이 납품단가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다. 비현실적으로 거의 살인적인 단가 후려치기도 많다. 정부는 공공사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책받는다. 정부는 이런 식으로 그동안 비리를 조장한 면이 있다. 그리고 업체들을 징벌하고 제도는 안 바꾼다.

▶김용삼=천안함 폭침사건은 국민적 추모 열기에 가려져 문제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잠수함을 잡으라고 만든 함정이 잠수함의 어뢰 한 방에 두 동강이 난 상황을 당하고 우린 단 한 번이라도 반성한 적이 있나. 반성도 없이 무기체계 이야기를 해 봐야 납세자들이 납득하겠나. 희생자에 대한 추모는 국민과 정치의 몫이고, 정부는 작전 실패의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해야 했다.
 
-정치권의 역할은.

▶김종대=우리는 민간인이 아니라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맡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군에 개혁을 맡길 수 있나. 비관적이라고 본다.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 강력한 국방 개혁을 끌고 가려면 국방의 난제를 해결할 마인드를 가진 정치권력이 출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군보다는 정치권력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주고, 여기에 국민의 동참을 이끌어 냄으로써 결국엔 군을 변화시키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홍성민=역대 정부들이 했던 고민을 공유해야 한다. 방위사업청은 문제가 많지만 부패를 없애기 위해 만든 것이다. 국방산업 선진화 전략, 상부구조 개편도 있었다. 여기서 교훈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정쟁화를 막는 길이다.

▶김용삼=국방 개혁의 책임은 정치, 즉 통수권과 국회에 있다. 특히 성공적인 국방 개혁을 위해서는 동맹구조, 군구조, 전력구조, 국방 연구개발(R&D) 및 방위산업구조에 대한 혁신이 필요한데 정치권의 역할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예를 들면 군정·군령권을 함께 가진 합동군사령부 출범 등의 군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합참의장제를 명시한 현행 헌법의 개정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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