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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밝힌 '盧 대북정책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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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유화적 대미 발언과 잇따른 대북 강성 발언은 대북 정책의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盧대통령은 미국 공영방송(PBS)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매우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으며 신뢰하기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출입기자단과의 회견에선 "북에 대해 우리도 유연하게 대응할 카드를 가져야 한다"며 "북핵 협상 과정에서 여러 변화가 예상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盧대통령의 이런 입장에 대해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나 화해협력이라는 큰 전략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북 협상 전술은 향후 급변할 것"이라고 정리했다.

盧대통령은 18일 전남대 강연에서 "지동설을 주장하다 화형을 당한 브루노와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한 뒤 재판소 문턱을 나오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갈릴레이를 대통령이 된 뒤에는 모두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유연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이런 盧대통령의 대북 전술 변화는 이미 실천 단계에 들어서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여러 채널을 통해 어마어마한 제안을 해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盧대통령이 내키지 않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연연하지 않고 있다. "지금 북한과 정상회담을 해봐야 아무 실익이 없다는 게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盧대통령의 판단"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노무현 정부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분석하고 "3자회담에서 우리를 배제하고선 북한은 어떤 것도 얻을 게 없을 것이며, 국민 동의 없이 화해협력은 없다는 단호한 대북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盧대통령의 이런 '코드'를 잘 못 읽어 혼쭐난 사람들도 있다. 지난달 남북 장관급회담이 별다른 성과없이 끝난 직후 盧대통령은 "앞으로 할 말은 한다"며 북한 쪽에 언짢은 심경을 피력했다. 그러나 송경희(宋敬熙)전 대변인이 이를 다소 유화적으로 전달, 盧대통령이 경질을 굳혔다는 전언도 나온다. 한 외교부 고위관리는 "한국이 뭐 나중에라도 3자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질책을 들었다.

盧대통령의 이 같은 북한관, 협상 전술의 변화엔 몇가지 요인이 있다. 북한이 자초한 측면이 첫째다. 북측은 한.미 정상회담 과정 중 '사용후 핵연료봉 재처리' '한반도 비핵화 선언 폐기'등을 잇따라 선언했다. 이 때문에 남북 교류협력에 대한 우리 측의 '명분'을 현저히 약화시켰다는 게 외교팀의 지적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盧대통령에게 '첨단무기로 인한 전략 변화'를 거듭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미국의 벙커 파괴용 소형 핵폭탄 개발 계획이 재론 중인 상황이었다.

미국 측은 "이라크 주민의 큰 인명 피해 없이 후세인을 첨단무기로 제거할 수 있다"는 비유로 '한반도 전쟁시 큰 피해'를 주장한 우리 측에게 대북 강경 카드 유지의 필요성을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상 외로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윤영관 외교부 장관과 한승주(韓昇洲)주미 대사, 반기문(潘基文)외교.김희상(金熙相)국방보좌관 등 참모들도 한.미 관계 우선의 중요성을 줄곧 盧대통령에게 조언해왔다.

최훈.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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