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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스승을 다시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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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사회는 위대한 지도자를 원한다. 위대한 지도자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이 아니라 정신세계를 이끌어주고 청정한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성인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2년 전 11월 일평생 칼날보다 치열했던 청화스님의 열반은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쉬움도 참회도 아닌 아름다운 성자의 삶을 반추하고 거울삼을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소설가 남지심은 하루 한 끼 공양을 하며 일생을 철저한 수행에 몰두해 온 청화스님의 40년 구도의 길을 장편소설『청화 큰스님』(전2권, 랜덤하우스 발간)을 통해 그려냈다.

이 책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던 도의 세계가 청화 큰스님의 생애를 투사함으로 해서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러면서 경직되고 낯설게 느껴지던 '도(道)'라는 말이 친근한 일상의 언어로 우리 피부에 와 닿는다. 아름다운 성자의 길을 좇아가는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이 청화스님의 모습을 형형하게 그려내는 것만 같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저자는 평생 숙제처럼 품었던 생각이 스승을 찾는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스승을 찾는 일은 쉽지가 않다. 소설가 남지심은 불교신자가 됐다는 자각을 하고도 10여 년간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청화스님을 만난 것이다. 청화스님을 만나던 날 도법스님도 함께 만났다. 두 분 스님을 한 날에 만났고 그 후부터 스승 찾는 방황을 멈췄으니 스승과의 인연도 숙세로부터 이어져 오는 게 아닌가싶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분별 심을 일으키는 알음알이, 즉 지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식이라는 배를 타고 바르게 방향을 잡고 나가야만 한다. 방향을 모르고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지식은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과 같다. 결코 장애가 되는 물건이 아니다. 스님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이 수행을 해 가는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을 즈음 멋쟁이라는 말이 크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 큰스님은 원래 멋쟁이셨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멋스럽지 않은 곳이 한군데도 없다. 머리에 쓰고 계신 모자, 입고 계신 법복, 목에 두르신 율무염주, 회색 목도리, 회색 신발, 스님이 지니고 계시면 모두가 멋스러워 보인다. 아름다움이라는 말과 멋스럽다는 말은 본래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 저자 소개: 남지심
' 一如' 남지심 선생님은 강릉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솔바람 물결소리'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이후 애환 가득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특유의 섬세하고 종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장편소설『연꽃을 피운 돌』『담무갈』, 수필집『욕심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꽁트집『새벽 하늘에 향 하나를 피우고』등이 있다. 우담바라는 90년대 초반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전 4권이 150만부 이상 판매되는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청화(淸華)스님: 청화스님은 1923년 전남 무안에서 출생하였다. 속명은 강호성.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사재를 털어 망운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사업을 벌였다. 동서양의 철학을 공부하던 중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화상을 스승으로 출가하여 득도하였다. 40여 년간 상무주암, 백장암 등 20여 곳의 토굴을 옮겨 다니며 하루 한 끼와 장좌불와의 수행을 했다. 1985년 전남 곡성의 태안사에서 대중교화를 시작해 미국 금강선원과 서울 도봉산 광륜사를 개원했다. 2003년 11월 세납 80세, 법랍 56세로 입적했다.

(조인스닷컴, 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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