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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이 책과 주말을] 아이의 눈으로 본 정글과 문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정글아이(원제 Dschungelkind)
자비네 퀴글러 지음, 장혜경 옮김, 이가서, 396쪽, 1만2000원

다섯 살 독일 여자 아이가 있었다. 언어학자이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나이에 인도네시아의 서파푸아(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뉴기니섬의 서쪽 절반)로 들어갔다. 아직 문명의 때가 끼지 않은 꼬마에게 정글은 천국이었다.

예컨대 사방이 놀이터였다. 태양이 뜨거우면 강에 텀벙 뛰어들었고, 원주민 아이들과 활 놀이도 즐겼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배가 출출해지면 벌레를 구워먹었다. 악어 고기는 별미 중 별미. 박쥐도 훌륭한 식량이었다. 곤충.동물을 좋아했던 꼬마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집안을 '자연사 박물관' 처럼 꾸미기도 했다. '타잔'이 따로 없었다.

어른 입장에서도 부러운 대목이 많다. 해와 달을 벗삼아 보내는 하루. 시계도 필요 없고, 경쟁도 없는 곳. 도시인이라면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유토피아에 가깝다. 책이 그런 이상향에 대한 찬양에 그쳤다면 그다지 주목할 필요가 없다. 문명과 대비되는 자연이란 단순 이분법은 오히려 복잡한 현실을 왜곡하는 까닭이다.

꼬마는 선입견이 없었다. 일례로 전쟁과 복수의 악순환에 빠진 원주민의 생활상도 보여준다. 또 피부색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사람들의 정겨운 얘기가 듬뿍 담겨 있다. 17살에 다시 문명권으로 돌아온 소녀. 그에게 문명은 공포덩어리였다. 그렇다고 원시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 저자는 과거.정글에 대한 예찬, 현재.문명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람 사는 풍경'을 가감 없이 그려나간다. 아무래도 무게추는 '좋았던 옛날' 쪽으로 옮겨가 있지만….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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