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스타 구경이냐, 연극 감상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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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그가 출연하는 날, 한양 레퍼토리 씨어터는 발 디딜 틈이 없다. 극장 규모는 120여 석. 통로까지 임시 좌석을 만들어도 객석이 모자랄 정도다. "설경구 출연을 묻는 전화 때문에 업무를 볼 수 없다. 전화를 아예 며칠씩 끊은 적도 있다"는 게 공연 기획자의 토로다.

꿈에 그리던 스타를 바로 코앞에서, 그것도 팬 사인회가 아닌 실물 연기로 감상할 수 있다는 건 가슴이 두근거릴 일이다. 게다가 그는 만들어진 '기획 상품 스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설경구의 연기력은 어땠을까. 아쉽지만 후한 점수를 받긴 어려울 듯 싶다. 대사는 자주 끊기며 주인공 '앤디'로 온전히 녹아 들어가지 못한다. 설경구가 나오지 않았을 때의 다른 연기자(이호재.최용민 등)를 보면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하게 다가온다. 최형인 연출가 역시 "연습 기간이 너무 짧았다. 영화 연기에 익숙해져 호흡이 긴 대사를 소화하는 데 힘들어한다"고 말한다.

설경구가 계속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음주까지 29회 공연중 7회만 나온다. 그 이후엔 올 연말까지 기껏해야 두세 번 더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설경구가 출연하지 않는 날 유료 관객은 절반을 넘기기 버겁다. 앞으로 '러브레터'의 객석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연극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바로 '스타'와 '연극'의 함수다. 스타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대중의 선택을 무조건 나무랄 수 없다. 반대로 '스타 시스템'에 편승해 연극을 만든다고 꼬집는 것 역시 연극계의 척박한 현실을 무시한 '무책임한 비판'일 뿐이다.

그나마 스타가 계속 나오면 흥행이라도 좋으련만 바쁜 스케줄이 발목을 잡는다. 스타가 떠난 뒤 남은 연기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지도 모른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란 어려워 보인다. 다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역시 스타로부터 출발해야 할 듯싶다. 스크린에서 볼 수 없던 깊이 있는 연기로, 무심코 스타를 보러 간 관객에게 연극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다면 연극은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이 깨져 관객들이 다음에도 또 극장을 찾지 않을까. 막강한 영향력만큼 연극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져주길 바란다면 스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걸까. 02-764-6460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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